축적의 결실, 과테말라 커피 (2)

테라로사, 과테말라 원두 이야기

by TERAROSA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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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가 있는 우에우에테낭고는 해발 1,500~2,000m가 넘는 높은 산지입니다. 아침이면 산 능선을 따라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고, 바다에서 건너온 바람이 하루의 온도를 부드럽게 식혀줍니다. 그곳에서 원두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익어가고, 시간을 들여 단단해지며 향을 머금습니다.


그래서 우에우에테낭고의 커피는 첫 모금부터 또렷합니다. 과실을 베어 문 듯 선명한 산미와 달콤한 향이 길게 이어집니다. 과테말라 커피 특유의 싱그러움 속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그 느린 시간에 있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바로 이 우에우에테낭고 산지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향에서 알게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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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커피의 수확 시즌에 알레한드로와 그의 농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가공시설을 살피던 중에 갑자기 어디에선가 향긋한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바람에 실려온 꽃향기로 착각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잘 익은 오렌지를 베어 물었을 때처럼 싱그러운 향이 계속해서 감지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워싱 스테이션에서 이제 막 펄핑을 시작한 게이샤 커피체리에서 올라오는 향이었답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알레한드로에게 물어보니,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이 소랭의 게이샤 커피로 COE 대회에 출품하려고 준비중인데 매번 입상에는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커피 체리의 껍질을 벗기는 이 순간에 이런 강한 향이 올라오는 커피는 흔치 않은데 COE대회에서 입상조차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공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건조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품질을 선보이고 싶은지 등등 긴 시간을 말이지요. 저는 그 대화에서 커피가 문제라기 보다 알레한드로가 택한 가공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땅, 우에우에테낭고


커피 산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주변 농장에서 새로운 가공 방식을 도입해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거나, 처음 보는 가공 방식의 커피를 바이어가 웃돈을 주고 구매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주변 농가들은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은 뒤로 미루고 일단 시도해봅니다. 결국 스페셜티 커피는 구매자의 최종 선택에 의해 그 가치가 인정되어 가격으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보니, 커피 품질과 관련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당장 평가자의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과 향에 근거해 거래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요. 그러다보면 '구매자가 좋아하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는 농부들이 조금은 도전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펼치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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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23504.JPG Ⓒ Yunseon Lee

하지만 국제 커피 품평회는 이런 주관적 선호도가 아닌 객관적 평가에 의한 정확한 품질 평가가 이루어지기 떄문에, 대회 출품작으로 이런 새로운 시도는 되려 역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알레한드로 역시 그의 농장에서 생산된 게이샤 커피 자체의 플래버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가공을 통한 새로운 플래버를 덧대려는 시도로 이색적인 가공을 해왔더라고요. 그것이 실제 그의 게이샤 커피가 본연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커피 체리 본연의 매력과 특징을 살리기 위한 가공법에 대해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누며, 워시드 가공을 비롯해 건조 시간의 중요성과 방법을 거듭 강조하는 설득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의 방점으로, 마침내 알레한드로는 게이샤 품종으로 '2025 Guatemala Cup of Excellence'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답니다.




함께 완성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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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생산하는 농부에게 있어 COE 대회는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세계 각국의 국제심사위원으로부터 최고의 커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대회 우승은 올림픽대회의 금메달처럼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지요. 알레한드로에게도 수차례 도전 끝에 마침내 이룬 성과이기도 하거니와, 본인 스스로도 커피의 품질이 나날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1위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10여 년 전 작은 샘플 봉투 하나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이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그 가치를 증명했고, 과테말라 스페셜티 커피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답니다. 서사와 감동이 가득한 해피 엔딩처럼 들리지만, 사실 커피 농사는 이렇게 핑크빛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알레한드로와 주변 농가들은 현재의 위상을 갖기까지 해마다 척박한 환경과 변덕스러운 날씨 그리고 부족한 노동력 등으로 힘든 해를 여러 번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쌓인 시간과 노력은 많은 배움과 실천으로 채워진 세월이며, 이 여정을 묵묵히 함께한 한국의 고객들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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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결과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듯하지만, 사실은 매일의 선택과 작은 반복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커피 한 잔이 원두에서 컵에 오르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듯, 우리가 바라는 어떤 목표 역시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향을 드러내지요.


테라로사가 2월에 소개하는 [과테말라 에르윈 부르봉&티피카]는 오랜 시간 정직한 축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원두입니다. 깊고 단단하게 완성된 풍미 속에서, 과테말라 커피가 지닌 본연의 매력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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