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열매가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 (1)

커피 가공 방식 이야기

by TERAROSA 이윤선

커피의 맛과 향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땅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그에 맞게 선택된 적절한 가공 방식이 맞물려 탄생한다고 볼 수 있지요. 특히 가공 방식은 커피의 향미를 결정짓는 마지막 손길과도 같습니다. 같은 품종, 같은 농장에서 수확한 체리라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밝고 투명한 산미로 표현되기도 하고, 묵직하고 달콤한 과실 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이야기는 커피 체리가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테라로사 원두의 고유한 풍미를 더욱 생생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열매에서 씨앗으로, 커피 가공의 시작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열매 속 씨앗입니다. 그래서 커피 수확기에 산지에서는 열매 수확부터 열매 속 씨앗을 얻어내는 작업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이 진행되지요. 커피 산업에서는 이 과정을 ‘커피 가공’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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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371.jpg Ⓒ Yunseon Lee

커피 가공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매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피 열매는 껍질 → 과육 → 점액질 → 파치먼트 → 씨앗으로 구분되는데요. 커피 자체가 씨앗을 먹는 열매이다 보니, 다른 과일과 달리 과육층이 두껍지 않고 과육이 껍질에 달라 붙어 있어 그 층 구분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얇지요. 따라서 껍질을 벗길 때 과육도 함께 벗겨집니다.


껍질을 벗겨낸 커피는 투명하고 미끄러운 점액질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점액질은 파치먼트와 붙어있어 손으로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탁기와 같은 원심력을 이용한 기계를 사용하거나 ‘발효’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제거합니다. 즉 커피 발효는 우리네 장류나 김치와 같이 발효균에 의한 풍미의 개발 혹은 변화의 의미보다는 대기중에 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이 미끄러운 점액질을 제거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답니다.




가장 전통적인 가공 방식, 워시드와 내추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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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드.JPG Ⓒ Yunseon Lee

발효를 통한 점액질 제거 방법이나 기계를 이용한 점액질 제거 방법이나 실제 커피 자체의 맛과 향의 차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점액질을 제거하면 우리네 쌀을 탈곡하기 전인 벼에서 볼 수 있는 파치먼트가 나오고, 이 파치먼트를 건조시킨 후에 탈곡하면 바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원재료인 ‘생두’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껍질을 벗겨내어 점액질을 제거하고 말려서 탈곡하는 생두의 가공 방식을 ‘워시드 커피’라고 총칭합니다.


설명만으로도 워시드 가공 커피는 긴 시간과 노동 집약적 방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생두의 생육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이 가공 방식의 커피는 품종 자체의 맛과 향, 그리고 생산지의 기후, 지형, 생태 등 떼루아를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내추럴.jpg Ⓒ Yunseon Lee

반면, 이런 수고스러움을 덜어내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 ‘내추럴 가공’입니다. 이는 껍질을 벗겨내는 워시드 가공과 달리, 수확한 커피 열매를 그 자체로 바로 건조하는 방식입니다. 건조되는 동안 수분 함량이 높은 열매에서 발효가 진행되고, 그 발효된 맛과 향이 씨앗에 베어들어 이국적 풍미가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커피 자체의 풍미보다는 가공 방식이 만들어 내는 풍미가 진하게 올라오는 커피가 대부분이지요. 때문에 원산지 혹은 원두 품종을 풍미를 통해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건조가 완전히 끝나면 한꺼번에 탈곡해서 생두를 골라내게 되는데, 이때 생두의 색은 은은한 노란빛을 띄게 됩니다.




새로운 가공 방식들의 시도


코스타리카 다양한 가공12.jpg Ⓒ Yunseon Lee

전통적인 커피 가공 방식인 '워시드''내추럴'은 스페셜티 커피 운동이 확산되는 2000년대에 들어 다양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추구하는 품질의 기본이 되는 단맛과 클린컵 외에도, 그 산지만이 가지고 있는 풍미 혹은 특별한 커피 풍미를 찾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요구는 산지에서 다양한 가공 방식의 시도와 발전이 이루어지게 했지요. 그중 가장 먼저 주목받은 새로운 가공 방식은 ‘허니 가공’입니다. 정확하게는 ‘펄프드 내추럴’이라고 불리는 이 가공은 브라질의 일부 농장들이 소량으로 진행했던 방식이지만, 코스타리카 농부들의 의해 전 세계 커피 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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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JPG Ⓒ Yunseon Lee

껍질은 벗기되 점액질은 제거하지 않은 채로 건조 후 탈곡하는 이 방식은 점액질이 건조되는 동안 커피의 맛과 향이 손실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커피 풍미가 짙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커피 단맛이 다른 가공 방식보다 뛰어난 점을 특징으로 잡아 ‘펄프드 내추럴’이라는 용어 대신 ‘허니 가공’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지요. 그 후로 다른 산지에서도 허니 가공이 널리 적용되고 확장되면서 더 다양한 버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레드 허니’, ‘블랙 허니’라고 불리는 가공법들입니다.


레드, 블랙 등은 파치먼트의 색상이 일반 허니 가공에 비해 붉은 기가 얼마나 도느냐로 구분하는데 이런 붉은 색상은 커피 체리에서 묻어납니다. 커피 체리의 껍질 부분을 일부 남기도록 펄핑을 유도하거나 혹은 건조 과정에서 벗겨낸 껍질을 섞어 말리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껍질에서 묻어나는 향을 파치먼트 속 생두까지 전달하려는 농부들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허니1.JPG Ⓒ Yunseon Lee

물론 일반 가공법에 비해 껍질이 더 있기 때문에 건조 시간이 늘어나는 단점이 있으나, 이런 느린 건조가 일부는 발효를 촉진시키고 일부는 커피 속 단맛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껍질이 과하게 섞일 경우, 발효취가 강하게 올라오는 단점이 있고 말리는 동안 습기 노출이 심하기 때문에 기후가 받쳐주지 않으면 되려 일반 허니 가공보다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허니 가공의 위상은 2000년대를 시작으로 2020년 전후까지 대대적 인기를 얻게 됩니다. 특히 바리스타 챔피언십을 통한 다양한 커피들이 대회에 사용되면서 산지에서 여러 품종과 가공법이 시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커피에서의 ‘발효’라는 키워드가 맛과 향을 좌우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지요. 동시에 와인 산업에 종사하던 발효 전문가들이 커피 산지를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커피 가공법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무산소 가공법’입니다.


무산소 가공 방식을 활용한 커피는 워시드, 내추럴, 허니 가공에 비해 시중에서 쉽게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스페셜티 시장에서는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향미를 원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지요. 테라로사에서는 워시드, 내추럴, 허니 공법에 따라 출시된 커피를 매년 새로운 뉴크롭으로 선보이고 있으니, 가공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풍미를 직접 비교하며 즐겨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무산소 가공 커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이 독특한 가공 방식을 거쳤을 때 어떤 매력을 지닌 커피가 탄생하게 되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전에, 테라로사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르완다 마헴베 윌리 부르봉 언에어로빅 원두'를 통해 무산소 가공 커피의 색다른 향미를 먼저 경험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원두는 르완다 마헴베 농장의 차세대 농부 윌리를 통해 무산소 방식 가공으로 새로운 시도를 거친 원두입니다. 이는 특유의 깨끗하고 선명한 풍미는 유지하면서도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커피의 탄생으로 이어졌지요.

3월이 가기 전, 여러분께서 이 새로운 풍미를 한번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테라로사 [Online Exclusive]르완다 마헴베 윌리 부르봉 언에어로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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