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벌의 옷을 떠나보내다.
“내일은 따뜻하니까 봄 느낌처럼
노란색 가디건을 입고 베이지색 치마를 입어야지.”
매일 출근하기 전날 밤,
나는 옷을 요리조리 코디하며 매칭해 보았다.
봄이니까 노랑, 분홍 같은 색감도 입어주고
여름엔 파란색 원피스를 시원하게 둘러주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화사하게 입는 것을 좋아했다.
“담당님을 보면 옷을 정말 잘 입으시는 것 같아요. 너무 예쁘세요.”
직장 동료들과 고객님들의 칭찬은
전날 밤 시간을 들여 옷차림을 고른 나에게 더없이 즐거운 기쁨이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옷을 쇼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옷보다 친척들에게 물려 입던 옷이 더 많았던 나는
옷에 대한 갈망이 마음 한켠에 있었다.
학창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날, 예쁘게 사복을 입은 친구들은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그 사람을 더욱 멋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옷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방패였다.
내가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직장 시절, 비로소 나는 옷에 대한 열망을 마음껏 누렸다.
월급의 반 이상을 옷을 사는 데 쓰면서도 즐거웠다.
“진짜 하루종일 택배 오더라. 택배기사님이 우리 집 주소 외우시겠다.”
아빠는 10개가 넘는 옷 택배를 들고 한숨 섞인 농담을 던지셨다.
'출근도 힘든데 옷이라도 나에게 즐거움을 줘야지!'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남들이 칭찬하는 나의 옷차림에 더 옷태가 나도록
살도 두 달 만에 10킬로 넘게 뺐다.
모두가 나를 예쁘게 바라봐주는 마네킹이 된 것 같았고
거울 속 내 모습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센스 있으면서 예쁘고 귀엽게 옷을 잘 입는다.”
그 말은 곧 일도 잘하면서 옷까지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이어졌고
내 자신감은 점점 차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옷이라는 행복 속에 있었다.
그런데 직장을 관두니 나는 더 이상 옷을 입지 않게 되었다.
노랑, 분홍, 연두색의 화려한 옷들은 짧고 튀고 작았다.
새로운 이직의 길에서 공부를 시작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이 된 나는
예쁘지만 불편한 옷을 입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있기 편한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몸이 편안한 옷을 찾게 되었다.
색상은 검정이 딱이었다. 먼지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았고
튀지 않고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었다.
공부할 때 화장을 하면 수정하기도 어려워 선크림만 바르게 되었고,
모자를 푹 눌러쓰면 화장 안 한 얼굴도 가려지고 햇빛도 가려졌다.
모자를 쓴 모습에 치마와 원피스는 어울리기 어려웠고,
그렇게 소중하게 하나하나 모으고 샀던 옷들은
한 달, 두 달, 그렇게 1년 동안 방치되었다.
처음엔 장롱 속에, 그러다 베란다 박스 안으로 옮겨졌다.
이사를 갈 때마다 큰 짐이 되었고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며칠에 걸쳐 옷을 싸서 옮겼다.
그러다가 정리에 대한 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더 이상 필요가 없거나, 두 달 이내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정리해야 한다.'
정말 큰 고민이 며칠 내내 이어졌다.
이 옷들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지금은 짐이 아니면 무엇일까.
지금의 나와 이 옷들은 어울리는가.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옷들을 입지 않으면서도
그저 ‘언젠간 입겠지’ 생각하며 짐처럼 보관하며 모셔두고 있었다.
새로운 길 위에 다시 서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그날로 나는 모두 중고거래를 하고 정리했다. 가히 100벌이 넘게 말이다.
장롱 속 꽉꽉 차 있던 옷들은, 베란다 가득했던 박스 안의 옷들.
정리하니 집안에 탁 트인 공간을 남겼다.
마음 한켠이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까마귀처럼 검정 트레이닝복만 고집하며
두 벌로 하루씩 번갈아 입고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산책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예쁘게 입었던 내 모습이 가끔 생각나지만 쉽지 않은 결정 끝에 후련함이 더 크다.
물론 옷이 주는 힘은 분명히 있다.
외적인 모습으로 첫인상이 결정되는 순간도 있고,
옷이 사람을 더 멋지게 보이게 해주는 매력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필요한 모습은
화려함보다는 깔끔하고 단정 함이었다.
오히려 화려한 옷은 더 화려한 것을 찾게 만들었고,
내가 해야 할 일보다 옷에 더 마음을 쓰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학생이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더 갖추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씩 덜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에 가까웠다.
화려함을 더하는 대신 단정함 속에서 나를 세우는 시간을 살며
지금의 나는 새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글을 쓰며 내면을 키운다.
글로서 나와 소통하며 마음이 평안해지고, 진짜 자산이 쌓이는 것을 느낀다.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이 자신이 신고 있는 높은 구두 때문에
불편하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매력적으로 보일까.
운동화를 신고 활기차게 웃으며 즐겁게 달리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제 나는 알록달록했던 옷차림의 지난날을 지나
이제는 알록달록하게 내 마음을 코디하며
내면을 겹겹이 입고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