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질수록 단단해지는 것
'25살이니까 명품백 하나쯤은 있어야지.'
여행길에 들른 면세점이었다.
반짝이는 매장과 “지금이 제일 저렴하다”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면세점이라 백화점보다 덜 비싸다는 설명은, 망설이던 나를 한 발 더 밀어냈다.
그렇게 나는 180만 원짜리 프라다 가방을 샀다.
지금은 300만 원을 훌쩍 넘는 이 가방은
2014년 그때의 나에게는 월급보다 비싼, 꽤나 고가의 물건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충분히 어른이라고 믿고 있었다.
명품백은 내게 단순한 가방이 아니었다.
‘일을 사랑하는 커리어우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멋진 여성’이라는 상징이었다.
나는 그 가방을 들면 사람들이 나를 쉽게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세상이 나를 얕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명품백이라는 물건에 자존심을 맡겼다.
돈이 있어 보이면, 성공해 보이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가방을 산 뒤 나는 오히려 더 예민해졌다.
비 오는 날, 물이 묻어 얼룩이라도 생길까 봐 가방을 티셔츠 안에 넣고 나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뛰었다.
버스에서는 바닥에 내려놓지 못해 무릎 위에 꼭 안고 탔다.
나는 가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방을 ‘모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외면을 가꾸는 도구들 파우더와 립스틱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다.
월급을 받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이제는 내가 일을 만들어야 하고,
사람들이 나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브랜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노트북과 키보드, 마우스, 전공 서적이다.
가방은 늘 무겁다.
어느 날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책과 장비를 쑤셔 넣는다.
명품백은 더이상 지금의 나의 삶을 담기엔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 이후 한 번도 메지 않았던 책가방을 다시 멘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메는 백팩이다. 스터디카페로 출근하는 길, 큰 가방 안에는 책과 필통, 노트북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무거운 물건을 명품백에 넣지 못했다.
가방이 쳐질까 봐, 형태가 망가질까 봐 조심했다.
결국 그 가방은 내 삶을 담지 못했다. 나는 비어 있었고, 가방만 값비쌌다.
지금의 백팩은 다르다.
형태가 조금 무너져도 괜찮다.
비를 맞아도 괜찮다.
무겁게 채워질수록 오히려 든든하다.
이제 나는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채운다.
가방이 나를 보호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내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25살의 나는 명품백으로 존중받고 싶어 했다.
36살의 지금의 나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백팩을 멘다.
그 안에 나의 미래를 담은 채로.
지금이 좋다.
내면을 채워가는 시간이 결국 나의 브랜드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