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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나팔꽃

ㅡ엄마를 추억하며~♡♡♡

by 유쌤yhs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

― 엄마를 추억하며


나팔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나팔꽃의 피고 지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피어 있는 나팔꽃만 보게 되고, 지는 나팔꽃은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오랜만에 찾아뵌 이웃님이 나팔꽃에 대한 글을 올리셨는데,

그 글에 남긴 내 댓글을 바탕으로 오늘의 글을 써본다.



작년 여름, 엄마가 오래 사시던 이층 양옥집에서 우리 4남매는 힘을 합쳐 엄마를 빌라 1층으로 이사시켜 드렸다.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에게는 딱 맞는 집이었다.

뒤에는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았고, 1층 엄마 방 뒤쪽으로는 화단과 주차장이 있어

방문 바로 앞에 차를 대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도 편했다. 엄마의 병원 진료 담당

운전자로서 이보다 더 좋은 집은 없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 방 창문틀을 타고 나팔꽃이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제법 많은 나팔꽃이 피어났고,

내가 일주일에 한두 번 들러 반찬을 해드리고 장을 봐드릴 때마다

그곳엔 언제나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엄마가 청소 중이던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녁이 되면 나팔꽃이 시들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린 엄마의 목소리.

나는 무심히 웃으며 말했다.


“아, 맞아요. 저녁엔 나팔꽃이 시든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자세히 본 적이 없네요.”


그 대화를 잊고 지내던 어느 주말 저녁,

엄마 집에 들러 창문틀을 올랐던 나팔꽃을 보니 정말 시들어 있었다.


“엄마! 진짜 저녁엔 나팔꽃이 시들었네요. 신기하다, 직접 본 건 처음이에요.”



그랬다.

엄마는 새 빌라에서 두 달 남짓 사시는 동안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을 매일 바라보셨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 떠날 때가 되셨음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새집에서 두 달을 보내신 뒤,

한 달은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지난겨울 천국으로 떠나셨다.

마지막 인사로 나는 엄마의 귀에 속삭였다.


“엄마, 이제 편히 가세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시고 엄마의 심장은 조용히 멈췄다. 20년 넘게 약으로 버텨오시던 그 심장이 이제 쉼을 얻은 것이다.



엄마를 보내고도 엄마 방은 그대로 두고 남동생들이 지내고 있다.

엄마방은 옷장만 정리하고,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방으로 쓰기로 했다.

지난 설에도 성묘를 다녀온 뒤 모여 식사하며 엄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5월까지는 나도 종종 들러 청소하고, 남동생들 장을 봐주고, 음식을 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는 글을 쓰고 여러 플랫폼 활동을 하느라 오프라인 세상에 소홀해졌다.

남동생들과는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고 가끔 만나 밥도 먹었지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집에는 쉽게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근처만 지나가도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도 성묘만 다녀오려 했는데,

남동생들이 음식 준비를 해놨다며 엄마 집으로 오라고 문자가 왔다.

출발하려니 눈물이 났지만, 용기 내어 들렀다.

엄마 방을 청소하고 동생들과 식사도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함께 노래방에 가서 엄마 생각을 하며 노래 부르고 울고 웃었다.



그날도 엄마 방 창문틀에는 여전히 나팔꽃이 올라와 있었다. 그 꽃을 바라보며, 혼자서 그 꽃을 바라보셨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다시 울컥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은

참으로 우리네 인생을 닮아 있다.



이 땅의 나팔꽃은

저녁이면 지지만,

엄마는 영원히 지지 않는

하늘의 나팔꽃으로 다시 피어나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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