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방황하다

의심 대신 응원을

by 수형

폭주 기관차처럼 해가 뜨면 부동산에 출석 도장을 찍으러 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생각해 두었던 위치를 리스트업 하고 무작정 동네로 향했다. 정처 없이 산책하며 보이는 부동산마다 들어가 원하는 조건의 매물이 있는지 살폈다. 여기서부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부동산 사장님 : 어서 오세요
나 : 안녕하세요! 제가 책방(or 독립 서점)을 하려고 상가를 알아보고 있는데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정도 하는 매물이 있을까요?
부동산 사장님 : 책방...이 뭐죠? 서점인가요? 그게 되나요?
나 : 아.. 그렇긴 한데..
부동산 사장님 : 그 정도 예산으로는 이 근처에서는 찾기 힘들어요. 혹시 나오면 연락 줄 테니 연락처 주고 가세요. (연락 없음..)
나 : 네에.. 알겠습니다아..


대부분의 부동산 사장님께서 동네책방이나 독립서점을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하려고 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시켜 드려야 적절한 매물을 찾아주실 텐데 초반에는 이런 어려움을 생각하지 못해 북카페라고 설명하며 얼버무린 경우가 많아 아쉽다.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사진을 보여드리거나 동네 서점이지만 학습서나 참고서를 팔지 않는 작은 서점이라는 식으로 설명드렸다.


작고 귀여운 예산도 문제였다. 월세나 전셋집은 여러 번 구해보았지만, 상가는 처음이다 보니 보증금뿐만 아니라 권리금도 고려해야 했다. 물론 최우선순위는 권리금이 없는 조건이었지만, 권리금이 조금 있더라도 입지가 괜찮다면 후보에 포함시켰다. 원하는 조건의 매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역시 발품이 답이라는 조언들은 틀리지 않았다.


1달 동안 15개의 매물을 살펴봤다

그리고 정체기도 찾아왔다

2025년 1월 2일부터 부동산 투어를 시작해 오늘이 2025년 2월 9일. 약 1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5개 정도의 매물을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어려움에 봉착했다. 유동 인구가 많아 입지는 좋으나, 권리금이 높았다. 주변 권리금 시세에 비하면 낮은 금액이고 예산 안에서 불가능한 정도의 액수는 아니었지만 고민이 되었다. 이전 업종이 유흥주점이라 뜯어고쳐야 할 게 한두 군데가 아닌 점도 브레이크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주일 가량 매물 근처를 돌아다니며 확인한 많은 유동 인구는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했다.


2025년 1월 8일에 처음 위 매물을 발견하고 2주 동안 정체기에 머물렀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매물을 찾거나 계약하고 밀고 나가야 하는데 어떤 결정도 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갑자기 불안함이 차올랐다. "내가 정말 책방을 하고 싶은 게 맞나..?"


책방 창업을 결심하고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주로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는 책들 위주였다.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 책방을 창업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책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체기에는 달랐다. 유독 '포기할 용기'를 다룬 에세이에 손이 갔다.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시작인데 자꾸만 제자리걸음인 스스로가 미웠다.


주변 사람들도 많이 괴롭혔다. 친한 언니에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염불을 외웠다. 원하는 대답이 있었던 건 아닌데, 괜히 포기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가 되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구나. (챗지피티도 퍼스널 상담사였다..)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다듬었다. 재취업을 위해 원티드나 잡코리아를 들락거리며 채용 공고를 확인한 후 포트폴리오도 정비했다. 몇 군데 지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이 명확한데 자꾸만 그 주위를 배회하고 비껴가는 기분이었다.


"10년 뒤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까? 그래도 언젠가 책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준비한 것도 없는데 지레 겁먹은 것 같은데. 나는 이 정도 그릇인 사람인가."


그럼에도 내가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은 나

몇 가닥의 아쉬움을 붙잡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약속해 둔 부동산으로 향했다. 4군데의 매물을 보여주셨고 그중 2곳이 마음에 들어 다시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곳에 꾸린 책방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약하고 금방 무너지는 사람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실행까지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그래서 점점이 작은 성취가 나를 일으켜준다는 것을.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가보자고. 나의 소중한 사람을 응원하듯, 딱 그만큼만 나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전에는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경험한 감정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업무, 새로운 동료는 겪을 땐 낯설고 무섭지만 지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자산이 되어주었다. 회사 밖에서는, 특히 사업은 모든 것을 오롯이 홀로 결정해야 한다. 계속할지, 멈출지, 나아갈지, 포기할지. 비단 사업뿐일까. 인생의 중대사는 누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니까. 먼 훗날 지금을 되돌아봤을 때 무엇이든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모양, 어떤 색, 어떤 냄새일지 궁금해진다.




계약이 코앞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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