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정직한 만남

나를 바로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by 물 긷는 자 연지신


이사님, 요새 살이 많이 빠졌어요.
얼굴도 안 좋아 보여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보는 사람마다 같은 소리를 하니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전에 없이 갈증이 심해 물을 많이 마신다. 화장실도 쉴 새 없이 간다. 1시간 이상 거리는 중간에 화장실 들리지 않고 바로 갈 수 없었다.

출근길, 맥도널드에 들러 급히 화장실을 갔다. 여지없이 라지 사이즈 콜라 한 병을 들고 나왔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또 화장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됐다.

‘별 일 아니겠지’ 생각하고 싶었다. 실은 일부러 피했다. 이상 있다는 것을 알면서 덮는 것과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는 체감하는 무게가 달랐다. 지금은 만일 죽게 되더라도 준비 없이 떠나고 싶었다.


전에 입던 바지를 입으니, 허리띠 구멍이 두 개나 줄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내에게 “저울 어디 있어?” 태연하게 물었다.

“클로젯 안에 있는데, 왜요?”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는다.

“사람들이 체중이 많이 줄었다고 해서. 얼마나 되나 보려고”

저울을 찾아, 건전지를 바꿔 끼고 몸무게를 쟀다.

‘이런…’ 무려 30파운드가 줄었다.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암인가? 체중이 이렇게 빠질 정도면, 손도 쓰지 못하는 말기 암인데…’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아내가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몸무게가 얼마예요?”

“좀 줄었네”

“얼마나 줄었어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30 파운드 정도…”

“뭐라고요?”

아내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속으로 신께 간절히 빌었다.

‘아직은, 제가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말기 암이면 어쩌지?
보험도 없는데…

남편이 출근하자, 공포가 가슴을 짓 누르며 밀려들었다. 손발이 묶인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이 딴 데 가있었다. 스토브에 올려둔 물이 끓고 있는 것도 몰랐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도 까맣게 잊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절대적인 무력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


‘지금 한국이 몇 시지?’ 시간을 보니 새벽 1시였다. 실례를 무릅쓰고, 여고 동창 경아에게 전화했다. 남편이 내과 의사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경아가 바로 전화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시간에 웬일이야?”

“남편 건강 때문에 뭣 좀 물어보려고, 미안한데 닥터 한,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어, 그래? 심각한 일이야? 잠깐 기다려.”


닥터 한이 전화를 받았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남편 증상에 대해 말했다.

“당뇨 같은데요.” 대번 이렇게 말한다.

“암은 아닌 것 같아요. 당뇨 증상이 거의 확실하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당뇨가 무서운 병이지만, 관리만 잘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면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불과 몇 시간 동안 지옥과 천국 두 군데를 다녀왔다.

지옥에 다녀오니, 그동안 번거롭고 힘들던 것들이 달리 보이며 소중했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식단이 바뀌었다. 흰쌀밥에서 현미밥으로, 빵과 국수, 당도 높은 과일이 사라지고, 야채, 두부 등이 올라왔다. 밥도 한 공기 정도로 끝냈다. 도시락을 쌌다. 저녁엔 한 시간 정도 같이 걸었다.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누게 됐다.

“지옥에 다녀오니, 여기가 천국인 걸 알았어요.”


문제는 크든 작든,

만나기 전, 괴물 같다.

무섭다고 피하면, 더 달려든다.

실상 괴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쥐어짠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고

슬며시 사라진다.


아침 안개는

해가 비치면 없어진다.




어머니, 내일 오후 2시에 도착하셔.

토요일 오후 2시 LA 공항은 105번 고속도로 공항 출구부터 막힌다. 먼저 가려는 차로 엉켜 꼼짝 못 한다. 주차하려고 뱅뱅 돌아도 자리가 없다.

'어머니가 먼저 나오시면 낭팬데, 전화기도 없으시고, 영어도...'

마음이 급하다.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가 겨우 주차했다.


비행기는 2시 30분에 도착했다고 안내판에 표시돼 있다. 입국 수속하고 짐 찾고 나오시려면 1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항공사에 통역, 짐 찾는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들어오실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휠체어 서비스로 들어오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나를 보시고 손을 흔들며 반기신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왜 이렇게 말랐어?”

“아, 네. 다이어트 중이에요. 괜찮아요,”

“몸 잘 챙겨. 아프면 아무 소용없어. 아버지도 관리 안 해서 그렇게 된 거야.”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가 물으셨다.

“아주 있기로 한 거야?”

“네... 그래야지요.”

3년만 있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벌써 4년이 흘렀다. 1년 전 일이 떠올랐다.


아내의 복직 기한이 한 달 남짓 남았을 때, 복직 여부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즈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여기에 계속 남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영주권은 여전히 불투명했고, 하는 일도 안정되지 않았다.


아무 보장 없는 상황, 어느 선택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이란 생각, 엄밀히 말하면 환상이었다. 힘든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현실도피일 따름이었다.

‘어려움을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아. 결국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지.’


미국에 계속 있기로 했다.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보장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했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얘들아, 할머니 오셨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매달린다. 어머니도 손녀들을 보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어머니는 가방을 풀어 아이들 선물과 먹을 것, 속옷 등을 풀어놓으셨다. 큰애가 부탁한 쥐치는 여러 묶음이나 가져오셨다.

식사 준비를 하던 아내가 대뜸,

“어머니, 아범이 많이 말랐지요? 당뇨예요. 얼마나 놀랬던지. 지금은 관리를 잘해서 많이 좋아졌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어머니 얼굴이 굳어졌다.


어제까지 아내와 걷던 길을, 이제는 어머니와 걸었다. 어머니는 나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따라오셨다. “나하고 걸으면, 운동이 안 되는 것 아니야? 너 먼저 빨리 가” 말씀하시며, 나를 챙기셨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걷고 돌아와 문 앞에 우편함을 열었다.

이민국에서 편지가 왔다. 지금까지 이민국에서 온 편지는 모두 좋지 않았다. 저절로 손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보니, 한 달 후, 소명 자료를 지참한 채 가족 모두 인터뷰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취업 영주권은 거의 인터뷰가 면제됐다. 게다가 주 신청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부르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내 표정을 본 어머니가 물으셨다.

“왜? 어디서 온 거야?”

들리지 않았다.

‘이건 또 어떻게 넘어가나...’ 그 생각뿐이었다.


‘이민국 관리가 애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으면, 힘들 텐데…’

‘이러다 추방되는 것 아니야…’

‘그때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옳았나?’

‘이제 애들은 어떡하지? 당장 돌아가면 있을 곳도 없는데…’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찌해야 좋을지 답이 안 나왔다. 입맛이 없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뼈가 타들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퇴근 후에 변함없이 어머니와 함께 걸었다. 서로 무거운 침묵만 있었다.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고작 한다는 말이 “추방되면, 버틸 때까지 버티다 나갈게요. 잘 되겠지요…”

어머니께 더 큰 아픔이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딱히 할 게 없었다. 이번에도 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곁에서 뭐라 말해도, 더 큰 짐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무기력을 인정해야 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힘을 다 소진하고서야 깨닫는다.

아내는 미국에서 쫓겨나면, 애들 때문에 한국으론 못 간다고 한다. 대신 캐나다로 가잔다.

‘캐나다에선 누가 반겨주나…’

입국장에 걸려있던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환영 문구가 떠올랐다.


인터뷰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애들에게 그냥 아는 대로 정확하게 대답하라고 당부했다. 애들은 어디 놀러 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O 이주공사 손 사장은 "미성년자는 인터뷰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 소리를 들으니 더 심란하다.


인터뷰 시간보다 30분 일찍, LA 다운타운에 있는 이민국에 도착했다.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편지를 보여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뷰 장소는 2층.

30분 정도 기다리니, 필리핀계로 보이는 이민국 관리가 우리를 호명했다. 이민 신청자들 사이에 가급적이면 같은 아시안계를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더 까다로웠다는 경험이 많았다.

한번 꼬이면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된다.


정직하게 답변하겠다고 선서하고 이민국 관리의 좁은 사무실로 모두 들어갔다. 그의 책상에는 가족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필리핀으로 보이는 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아빠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아니?”

“매일 회사에 출근해?”

“뭐 하는 곳인지 알아?”

막내와 둘째는 어려서 거의 묻지 않고, 주로 큰애에게 물었다. 큰애는 나이도 어린데 능청스럽게 잘도 대답했다. 때론 웃으며, 간간히 농담도 했다. 인터뷰는 30분을 지나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관리는 가져온 서류를 쭉 훑어보더니 아이들에게 “영주권을 승인할 테니,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라.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듣자마자, 막내가 그를 확 포옹했다. 그도 활짝 웃었다.

인터뷰 끝에 ‘2주 안에 영주권이 도착할 것’이라 말한다. 만약 도착하지 않으면, 연락하라고, 안내장을 주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통역사가 내게 말한다.

“애들 때문에 받았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어려운 인터뷰는 처음이네요. 애들이 아주 잘했어요.”


애들과 함께 인터뷰 오는 것이 내내 찜찜했다. 그런데 애들 때문에 인터뷰를 통과했다. 이번에도 내 생각이 틀렸다.

‘하긴, 노벨상 수상자의 예측도 번번이 빗나가는데, 나야 말할 것도 없지…’


가장 절망적인 순간,

두려운 현실을

대면할 때,

내가 바로 보인다.

그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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