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하고 인정하는 자세
쿵쿵쿵
갑자기 누가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지금 이 시간에 누구지?’
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내다보니, 경찰관 한 명과 낯선 여성이 서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백인 남성 경찰은 키가 190cm는 족히 돼 보였다.
미국 경찰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에 가슴이 떨린다. 옆에 선 여성은 동양계였고, 옷차림이 단정했다. 손에는 뭔가 서류가 들려있었는데 공무원 같았다.
가슴이 떨렸다.
‘무슨 일이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시 며칠 전, 아이한테 소리친 거 때문에 누가 신고했나?’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문을 열었다.
여성은 나를 보자 가볍게 미소 지으며 신분을 밝혔다.
“저는 LA 카운티 아동 보호국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한국말이 더 편하시면, 한국어로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한국인이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잠시 서류를 펴더니 서툰 한국어로 질문을 이어갔다.
“최근에 앞집에서… 아이 울음소리나, 좀 큰 소리 같은 거 들으신 적 있으세요?”
우리 아파트는 두 가구가 문을 마주 보는 구조이다. 앞집 엄마는 나와 동갑이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 와서 자주 이야기 나누며 친해졌다. 앞집도 애가 셋인데 큰 애와 막내가 딸이고, 가운데가 사내아이였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학생 회장을 맡을 정도로 똑똑했지만, 둘째와 막내는 지적 장애가 있는 특수 아동이었다.
특히 둘째가 좀 더 심해서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성품은 착하고 온순해서, 때로 엄마가 다른 일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거나 화가 나면, 그 화살이 온통 둘째를 향했다.
남편은 다운타운 의류 회사에서 회계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 같아서, 가끔 마주쳐도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었다. 최근 한쪽 눈에 녹내장이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전, 그녀가 둘째 아이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요새 들어 남편이 퇴근하면, 방에만 콕 박혀서 통 나오질 않아. 말도 없고…
자기만 힘든가. 나도 진짜 죽겠는데…, 아무 말 없이 저러고 있으니 내가 속이 터져서 미치겠더라고.
마침 그때 둘째가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얼마나 졸라대던지,
화가 치밀어서 소파에 있는 쿠션을 확 집어던졌어. 그게 하필 아이 안경에 맞아서, 코 옆이 살짝 긁혀서 까졌는데 그걸 학교에서 선생이 보고 바로 신고한 거야.”
한국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아이가 장애가 있다 보니, 선생님이 더 주의 깊게 본 것이다. 그녀 말로, 며칠 전 한인 소셜 워커가 집으로 찾아왔다.
설움이 북받치고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에 그만 울음이 터지며,
“제가 애한테 던졌어요. 화가 나서… 그만…” 이렇게 말해 버렸다.
소셜 워커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사관들이 나오면, 그렇게 말하시면 안 돼요. 쿠션을 벽에 던졌는데, 그게 튕겨서 애한테 맞았다고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정말 조사관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암담했다. 혹시 말 잘못해서 그녀가 잡혀가면 어쩌나 두려웠다.
“저야 잘 모르죠. 그런데, 그 집 엄마가 애들한테 얼마나 잘하는데요. 여기 한국 엄마들 다 그래요. 조사관님 부모님도 그러시지 않았어요?”
어느 부모나 다 그랬다. 특히 엄마는 아이를 갖는 순간 자기 인생은 없었다.
여성 조사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찰관에게 내 말을 전한다. 경찰관도 잠시 뭔가 적더니, 한 마디 한다.
“친구분께 수고가 참 많으시다고 전해주세요. 제 아들도 같은 장애가 있어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앞집 엄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황에 매몰되지 않았다.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며, 큰애, 둘째가 일을 돕도록 가르쳤다.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편할 텐데, 자식을 위해 그리했다. 게다가 가게에서 막내까지 돌보며 일했다.
그이 남편은 ‘두 아이가 아프고, 자기도 어쩌면 한쪽 눈이 실명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끔 마주치면, 점점 더 우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 베트남에 있지 않아?
대학 동기 기호를 우연히 식당에서 만났다. 베트남에 주재원으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여기 웬일이야?”
“애가 중증 자폐인데, 베트남보다 여기가 나을 것 같아서. 다 정리하고 왔다.”
마침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이번 토요일 오후, 그의 집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의 집은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타운홈 단지였다. 관리가 잘 돼 있었고, 수영장도 크고 깔끔했다.
“똑똑.”
문이 열리며, 부부가 아이 손을 잡고 서있다. 거의 10년 만이다.
“어휴, 참 오랜만이네요. 졸업하고, 처음이죠?” 그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오랜만이야. 멀리서 이렇게 보나니. 너무 반갑네. 어서 와. 와이프는 같이 못 왔어?”
“아내는 애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토요일이 더 바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탁에 모여 앉았다.
그는 대학 시절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짙은 눈썹에 아직도 머리숱이 풍성했다. 미남이면서 성격도 온화했고, 굵은 중저음 목소리는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당시, 그의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손을 뿌리치고 저쪽 구석에 가있던, 아이를 엄마가 손짓을 하며 불렀다.
“얘, 이리 와. 아빠 친구 오셨네. 와서 인사해야지”
아이는 부모를 닮아서 키가 컸다. 열 살이라고 했는데, 중학생 키는 돼 보였다.
나는 좀 어색하게 “안녕?” 하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엄마가 “얘가 자폐가 심해요. 그래도 나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정말 사랑스러워요.”
그녀의 얼굴 표정에서 가식적인 도덕심이 아닌 진심이 보였다.
아이 엄마가 과일을 깎고, 차를 준비하는 동안, 기호는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수영을 정말 좋아해. 그래서 이리로 이사 온 거야. 여기 수영장이 안전하고 괜찮거든.
어떤 날엔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안 나와. 한 번은 새벽에 화장실 가다, 애 방문이 열려 있어서 가봤는데 없는 거야. 놀라서 찾으러 나갔더니, 역시나... 새벽 두 시에 수영을 하고 있더라고. 한참 기다리다, 혼자 둘 수 없어서 억지로 데려왔는데, 그때부터 발버둥 치며 우는데, 그 새벽에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어.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다시 수영장으로 데려갔지. 아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았어.”
간간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이 촉촉했다.
그의 아내가 과일과 따뜻한 매실차를 내왔다. 함께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노스리지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고 있어. 손님이 거의 히스패닉인데, 수입은 괜찮아.”
그 지역은 나도 수년간 코인 빨래방 청소를 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돈 많이 벌면, 뭐 하냐?’ 다분히 이런 뉘앙스였다.
“거의 하루 종일,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해. 집에 오면, 와이프도 애 때문에 기진 맥진 해있고, 하나도 재미없어.”
그의 아내가 곁에서 한 마디 한다.
“내가 자폐아를 둘 키워요. 집에 오면, 이거 달라. 저가 해달라. 꼭 애 같아요. 뭐라고 하면 잘 삐지고”
두 사람은 그동안 대화가 목말랐던지, 내게 계속 말을 건넸다. 어느 때부턴가, 부부간에 이야기를 하면, 자꾸 다투게 돼서 이제는 피한다고 했다. 그 중심에 아이가 있었고, 부부가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멍한 눈으로 말했다.
“애가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면, 시커먼 절벽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이야. 그때는 정말 뭐라 할 말을 잃어.” 체념 섞인 표정이었다. 부부의 체념이 서로 달라 보였다.
아빠는 아이를 체념했고, 엄마는 아이에 대한 자기 기대를 체념했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다음에는 우리 집에 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누구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만난다. 어떤 이는 현실을 거부하며,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히면, 낙심하고 절망한다. 다른 이는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며 산다.
이번 토요일, 가족들과
할리우드 볼 뮤직 페스티벌에 갈까요?
사장이 가족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할리우드 볼 뮤직 페스티벌에 가자고 제안했다. 직원들 모두 대환영이었다.
이번 할리우드 볼 행사에는 유명 뮤지션들이 대거 참석해 광고도 대대적으로 했다. 우리 회사는 행사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해서, 그 덕에 무료 티켓이 여러 장 나왔다.
2005년 4월 넷째 토요일, 날씨는 화창하게 맑았다. 나는 아내에게 행사가 밤늦게 까지 계속돼, 꽤 쌀쌀할 테니 두꺼운 옷과 담요를 챙기라고 했다. 아내는 미국 와서 처음이라며 들뜬 기색이었다. 행사장 가는 길이 막히고, 주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모든 게 즐겁고 유쾌했다.
언제나 마음의 날씨가 바깥 날씨보다 더 중요했다.
이 날 행사에는 거미, 비, JYP, 김건모 등 한국 가요계 최고 스타들이 총 출동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손뼉 치며, 오랜만에 향수에 젖었다. 나는 회사에서 준비한 와인을 음료수 마시듯 들이켰다. 옆에 앉은 죠와 이미 여러 병을 비우니 얼큰하게 흥이 올라왔다, 화장실 가는 길에 이웃집 선우를 만났다. 그는 고등학교 동문회 총무인데, 아침 일찍부터 동문회 행사를 준비했다.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한다. 그도 얼굴이 벌갰다.
“공연은 봐서 뭐 해. 이리 와서 한 잔 더 하자고”
내 손을 잡아 끈다. 나도 못 이기는 체 따라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일어나 보니 집이다. 기억이 하나도 없다.
회사를 가려고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으니, 아내의 눈빛이 싸늘하다. ‘
“어제, 어떻게 됐어? 기억이 하나도 없네”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차에 두고 그냥 들어왔는데, 더운지 밖으로 나왔어. 차가 알람이 울리고 시끄러워서 새벽에 끄고 들어왔어요.”
선우가 거의 기절하다시피 한 나를 부축해서 자리로 왔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 모두 나갔는데 내가 일어나지 않으니, 죠가 나를 부축해서 겨우 차까지 데려다주었다.
“여자가 왜 남편을 떠나는지 알아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는 게 힘들어서 떠나는 거 아니에요. 남편한테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서 떠나는 거예요.
어제 당신 모습을 보고, 나도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다음부터 그러지 마요.”
얼굴이 화끈했다.
나도 기호나 앞집 남자처럼 어떻게든 이런 힘든 상황을 해결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벽에 부딪히니 흔들렸다. 아내까지 무너뜨릴 뻔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외치는 것을 용기 있고, 꼭 지녀야 할 미덕으로 꼽는다.
하지만 내 사전에는 불가능 투성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이 작게 보인다.
용기는 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같이 가는 것이다.
인정하는 것과 굴복하는 것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