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으로 쌓은 벽, 진심이 허문다
나 지금, 공항으로 출발해.
혁수가 돌아간다고 연락이 왔다. 친구가 멀리서 왔는데, 충분히 시간을 내지도,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어느새 벽이 생겼다. 자존심 때문일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허영심의 다른 얼굴이었다.
이런 것들로 스스로 벽을 쌓으며, 가둔다.
언제든 다른 사람이 나를 볼 수 있고 들어오도록,
벽을 허물면,
기회가 우연으로 변장해서 찾아온다.
벽은
‘진심’으로 허물어지고,
‘거짓과 위선’으로 높아진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의미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나마 몇 있던 광고주도 거의 끊겼다.
이곳은 타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우리에게 벽은 높았다.
‘여기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늘 이런 투로 건성으로 대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장은 광고에 대해 문외한이고, 나는 미국에 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난 애송이였다.
아내가 가져온 돈은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은행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사정이 이러니, 사장과도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됐다. 그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내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람은 원래 남 탓을 하게 돼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벽이 차츰 높아갔다.
막 퇴근하려는데, 사장이 “진 부사장, 근처에 후배가 하는 광고 회사가 있는데 잠깐 들러볼까?”
특별한 일도 없고 '혹시 기회가 될지도...' 하는 생각에 좋다고 했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11월 초인데,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사람들이 한국의 겨울 옷 같이 두툼한 옷을 껴입었다. ‘아직, 그 정도로 춥지는 않은데…’ 익숙하지 않으니 움츠린다.
회사는 윌셔와 버몬트 교차로에 있어, 늘 차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장 이름은 박우철. 전 사장의 고등학교 1년 후배로, 한국에서 J 제약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제약은 광고비 지출이 가장 큰 업종 가운데 하나이다. 박 사장은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지만, 안경 너머 눈매는 날카로웠다.
‘이 바닥에서 몇 년을 버텼다면, 실력이든 영업력이든, 아니면 광고주에 대한 무한 충성이든… 뭔가 있다.’
우리가 들어가자, 늦은 시간인데 직원들이 퇴근할 생각을 안 한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게 뭔가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박 사장이 먼저 "K사 한인 광고 회사를 선정하는 경쟁 PT"라고 말한다. K사는 한국에서 탑 10 안에 드는 글로벌 기업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벽을 쌓고 자기를 보호하는 서부 개척민과 비슷하다.
'이런 기밀을 초면인 내게 말하다니. 왜지?’
박 사장이 지나가는 말로, “다른 것은 그럭저럭 준비할 수 있겠는데, 기획서 준비하고 PT 해줄 사람이 없네…”.
순간, ‘바로 이건대!’ 하는 생각에 눈이 지그시 감겼다.
곁에 있던 전 사장이 불쑥, “우리 진 부사장이 한국 최고의 프레젠터야. 이름깨나 날렸어” 라며 나를 소개한다.
박 사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어… 정말이에요? 어디 출신이에요?”
마침, K사는 한국서 근무할 때 바로 옆 팀 광고주라, 회사 분위기, 제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간단히 내 소개와 K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2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헤매고 있어. 와서 좀 도와줘요. 부탁합니다.”
목소리와 동작이 약간 컸다.
가슴이 뛰며 잠들었던 본능이 꿈틀댔다.
아무 조건 없이 PT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금 그는 한 사람의 도움도 절실했다. 수주에 성공하면, 구체적인 조건은 그때 협의하기로 했다.
“간단히 계약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전 사장은 불안해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만약 프로젝트를 따낸 뒤, 내가 떠나버리는 상황이 벌어질까 지레 걱정되는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정작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은 계약을 따내는 것이 먼저였다. 상대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결정을 강요하거나 억지로 끌어내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아쉬운 쪽이 먼저 욕심을 내려놓아야 일이 풀린다. 아쉬운 쪽은 우리였다.
나는 그동안의 프레젠테이션 경험으로 ‘영감’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광고나 마케팅의 분석과 이론을 넘어서는, ‘이거다!’하는 직감으로 뚫고 들어오는 통찰이었다.
그 감각이 오면 곧바로 확신으로 바뀌었고, 단숨에 방향이 잡혔다.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도 청중을 몰입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 영감을 간절히 구했다.
간절함이 모든 것을 현실로 바꿀 수 없지만, 간절함 없이 특별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i 광고 회사로 출근했다. 어제 박 사장이 열쇠를 줘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가장 먼저 출근하는 편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그날 계획을 미리 생각하는 시간이 좋았다. 이렇게 한 시간쯤 정리하다 보면, 하루 일이 반은 끝났다.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아이디어는 반바지 입고 멍하니 있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손으로 적으며, 마음을 집중할 때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을 꽉 붙잡아야 한다.’
“타깃, 소구점, 경쟁사, 회사 사정, 가장 절실한 목적, 지금 고객이 뭘 원할까…”
나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깊이 들어갔다.
그때… 번개처럼 하나의 문장이 지나갔다. 살짝 내게 손짓하며 미소 지었다.
‘미국이 열광했다!’
눈이 확 뜨였다.
잠시 후,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i 광고회사는 카피라이터 박 사장과 디자이너 3명, AE가 2명으로 총 6명이었다. 나까지 합류해서 총 7명이 함께 미팅에 참석했다. 사장과 디자이너 변 실장 빼고는 거의 경험 없는 신참들이었다.
작성한 브리프를 자세히 설명했다. 광고주를 설득하기 전에 나를 설득해야 하고 팀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한 번에 납득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콘셉트 ‘미국이 열광했다 - K사 OOO’
모두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사장도 상당히 흡족해한다.
모두가 의심 없이 좋아하는 것 같다. 결과도 기대할만하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다시 원점으로 와야 한다. 자기 아이디어에 매몰돼 고집을 부리면 패배를 자초한다.
콘셉트가 정해지니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며 하나하나 신경 썼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기획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원고를 외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동작 하나하나까지 신경 썼다. 발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펜을 가로로 입에 물고 크게 소리 내어 연습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발표날이 되니, 자신이 있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은 오전 10시였다. 출근 시간에 K사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아침을 K사 근처에서 여유롭게 하기로 하고, 7시에 출발했다.
8시에 K사 가까운 맥도널드에 도착했다. 나는 식사 대신 커피만 마셨다. 속을 비우는 것이 정신이 맑고 깨끗했다. 머릿속으로 계속 이미지를 연상하며 집중했다.
30분 전 K사에 도착했다. 회사는 직원이 거의 미국 사람이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직원 안내로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총 3개 회사가 참여하는데 우리 회사가 제일 먼저 하고, 나머지 두 회사는 오후에 한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식사 후 오후 시간에 하는 프레젠테이션은 집중도가 훨씬 떨어지기 마련이다. ‘초반에 임팩트를 주는 것이 관건이다.’
하늘도 돕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았다.
시간이 되자, 한 명씩 입장을 했다. 사장도 참석했다. ‘사장이 참여하면 오늘 결정 난다. 임팩트를 주는 한 가지, 그것으로 결정된다!’
순간, 라디오 뉴스 시보가 떠올랐다.
‘그래 이거야’
프리젠에이션은 순조로웠다. 반응도 좋았다. 프레젠테이션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희는 K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미디어 툴을 확보했습니다.
바로 라디오 시보입니다. 매 시간 뉴스 시작 전, K사 광고가 차를 타고 움직이는 모든 사람에게 반복해서 들립니다. 자연스럽게 각인되죠.”
설명을 마치고 직접 시연했다.
“미국이 열광했습니다. K사 OOO이 9시를 알려드립니다. 띠띠띠 땡.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가만히 주목하던 K사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장이 나를 응시하며 한마디 했다.
“그거, 언제부터 가능해요?”
“다음 달부터 가능합니다. 경쟁이 치열해서, 바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을 나서자, 모두 들떠 있었다.
이미 프로젝트를 따낸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 역시, 확신이 들었다.
이틀 뒤, 박 사장이 내게 “진 부사장, 우리가 선정됐다는 공식 연락이 왔어. 우선 라디오 시보부터 바로 진행하래.” 전화를 했다. 가슴이 확 뚫렸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전 사장이 곁에서 보고, 이런 중요한 일을 자기에게 직접 전화하지 않는 것을 내심 불편해했다. 함께 i 광고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축제 분위기였다. 샴페인이 터졌고, 박수가 쏟아졌다.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뼉을 쳤다. 박 사장은 어린애처럼 들떠 있었다. 마치 아메리칸드림을 다 이룬 것 같았다.
나도 마음 한편이 푸근해졌다.
‘이제 좀 풀리려나…’
그런데, 한 사람. 전 사장은 초조해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는 오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사장, i 회사하고 어떻게 계약하는 게 좋겠어? 지금 정해놔야 나중에 말썽이 없을 거야”
“먼저 분위기 보고 판단하시죠.”
나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타이밍이 중요해. 지금은 결정할 때가 아니야. 조급하게 서두르면 깨져.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이끌었고, 지금 박 사장은 내가 필요해.’
전 사장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내가 i 사에서 눌러앉는 것은 그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사실, 박 사장은 PT가 끝난 뒤부터 계속 “진 부사장, 내가 영주권 스폰서 해줄게. 우리 회사로 와. 거기선 힘들어. 가족 생각도 해야지.” 이런 말로 나를 전 사장과 떼놓으려 했다.
전 사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박 사장을 눈짓으로 불렀다. '아마 계약 이야기겠지.
지금은 전 사장이 불리한데 자꾸 조급하게 서두른다.' 박 사장은 전 사장을 이미 장애물로 여겼다.
잠시 후 전 사장이 나를 부른다. 합의가 안된 것이다. 공은 내게 넘어왔다. 지금은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거래할 때다.
거래는 더 가지려고 고집 피우는 것이 아니라, 간격을 좁히는 기술이다.
“오늘은 축하만 하고, 내일 이야기하시죠” 시간을 버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금 조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급할 때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세운 철칙이었다. 계약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억지 합의가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i 사와 나와의 계약은 깨지지 않는다. 서로가 100% 만족할 수는 없다. 최대한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무얼까?’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생각했다.
‘만약 내가 박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면 결정할 수 있을까?’ 회사에 도착할 무렵, 생각이 정리됐다. 전 사장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내가 풀타임으로 i 사에 파견 근무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6개월 계약. 한 달에 만불씩 받는 것으로 하지요.” 일종의 용역 계약이었다.
그도 수긍했다. 박 사장도 그 정도라면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단 큰 계약을 따내 기분이 들떠 있을 때, 결정하는 것이 유리했다.
나는 다음 날부터 i사로 출근했고, 전 사장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계속 혼자 있어야 했다, 나는 한 달에 한번 박 사장에게 돈을 받아 그대로 전 사장에게 갖다주었다. 그 돈으로 두 사람은 월급을 가져갈 수 있었다.
박 사장은 틈만 나면, “진 부사장, 우리 회사로 와. 우리 같이 힘 합쳐서, 크게 키워보자고.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재촉했다. 영주권 스폰서도 함께 제안했다.
나는 그의 태도가 왠지 불안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너무 즉흥적이었다. 또한 자기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했다.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많았다.
“저 친구, 얼굴 표정 봐. 뭔가 있어. 내가 저런 사람 많이 봤다니까...”
“저런 관상은 틀림없이 나중에 배신할 상이야. 아마 우리 회사 정보를 딴 데 주면서, 나중엔 그리 갈걸.” 늘 이런 식이었다. 이런 사람을 믿고, 한 배를 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내가 i사에서 일하며, 자리를 비우는 동안, 아무 일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나마 몇 있던 광고주를 전 사장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차츰 하나 둘 빠져나가더니, 두세 달 후 모두 다른 회사로 떠났다.
6개월 후 약속했던 계약 기간이 끝났다. i사 직원들은 이미 K사 업무에 많이 익숙해졌다. 박 사장은 한 달에 1만 불씩이나 지불하며, 굳이 나와 일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계약은 연장되지 않고 끝났다.
그로부터 2개월 후, 나와 전 사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폐업을 결정했다.
나는 그에게 “이제는, 어쩔 수 없네요. 각자 살 길을 찾아보시죠.” 그는 이미 예상했지만, 많이 서운해했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네. 자주 보자고…”
그는 본성이 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선함이 상황에 따라 무능력으로 보였다. 그도 나를 불편해했고 벽이 계속 쌓여갔다.
K사를 영입한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K사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른다.'
언제나 지금이 최선이라고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했다. 이것은 무작정 긍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안경이었다
우연으로,
삶이 채워진다.
최선으로 보였던 것이
최악이 되기도,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예상할 수 없다,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면
어느 순간,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