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미루지 않기로
나는 장녀다.
딸 많은 집의 장녀가 으레 그렇듯, 여러모로 여동생들보다 어설프다.
부모님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대가인지
나는 아직도 어정쩡하고 빈틈이 많다.
대신 여동생들은 내게로 쏟아지던 부모님의 시선을 비켜서서, 적당한 자유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더 야무지고 단단하다.
우리는 치열하게 싸우며 자랐지만,
이제 그녀들은 내 삶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상담가가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가장 모자란 나에게 장남의 역할을 기대했다.
처음엔 안쓰러웠다.
오랫동안 ‘그래야 하는 사람’으로 길들여진 나는 엄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그 한숨의 이유를 두루 살피느라 바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의 한숨이 내 한숨이 되었다.
책임은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슬그머니 도망치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거창하게 해낸 일은 없다.
그저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나를 오래 짓눌렀을 뿐이다.
엄마의 전화가 부담으로 느껴질 즈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부러워.”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연하다고 여긴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후회하기 전에,
조금 더 다정한 딸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운동 가는 길에 전화를 건다.
“엄마, 오늘은 뭐 해?”
별다를 것 없는 안부지만,
이 한마디가 우리가 서로를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