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지워버린 여자

축하가 조금 민망해지는 나이

by 하하

내 생일은 3월이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되는, 사람도 마음도 조금 어수선한 달.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 생일상은 꽤 성대했다.
엄마는 신학기라며 새로 사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했다. 팥찰밥과 미역국을 끓이고, 나물에 잡채에 고기, 떡까지 한 상 가득 차려주셨다. 내가 살던 경상도에서는 생일날 미역국과 팥찰밥을 함께 먹었다.

문제는 초대 명단이었다.
한 반에 60명이나 되던 시절, 좁은 우리 집 거실에 모두 부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늘 ‘친한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친구’ 사이에서 외교라도 하듯 명단을 골라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인기 있는 남자애들도 몇 명 슬쩍 초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속마음을 숨긴 채 남자애들을 원수 대하듯 했다. 좋아해도 싫어하는 척하는 것이 그때 우리의 예의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나는 엄마의 생일상이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집에서는 케이크와 양초가 등장했지만 우리 집 상에는 늘 팥찰밥과 나물들이 올라왔으니까.


그래도 시루떡에 초를 꽂아 불을 끄면, 나름 구색은 갖춘 생일파티였다.

대학 시절이 되자 생일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3월이라 개강파티가 열리고, 자연스럽게 그 뒤풀이는 늘 내 생일파티로 이어졌다.

어느 해에는 너무 내 생일을 떠들고 다닌 탓에 막상 그날 아침이 되자 축하를 받는 게 괜히 민망해져 오전 수업을 몽땅 빠져버린 적도 있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하다. 떠들 때는 신이 나지만, 막상 축하가 몰리면 숨고 싶어진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자 또 다른 생일 문화가 등장했다.
카톡 선물하기.

생일 아침이면 휴대폰이 ‘카톡카톡’ 울린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축하라기보다 마음의 빚 알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생일 공개를 지웠다.
축하도 줄었고, 마음의 빚도 함께 줄었다.

생일을 야무지게 찾아 먹다 보면 멋진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어른이 되기는커녕 부족한 점과 후회할 일만 하나둘 더 발견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꼬박꼬박 찾아오는 생일이 예전처럼 설레기보다는 조금 버겁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기꺼이 이 순간 내 편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소소하게 밥 한 끼 먹는 생일 정도는 괜찮다.

나는 원래
노는 걸 꽤 성실하게 좋아하는 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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