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사회학의 차이점
프랑스인 인류학자 클로이와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작은 갤러리에 우연히 들어온 그녀와, 때마침 손님도 없고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던 나는 들어오는 외국인인 그녀가 프랑스인이길 바랐다.
몇 줄의 대화가 오가고 그녀가 ‘프랑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마자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tu es français? 프랑스인인가요?
대뜸 물어봤다
oui oui! 네 맞아요
그녀는 한국의 나무 공예,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 전통 수공예에 대한 연구를 하러 3개월 정도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인류학자는 처음 보는지라 신기했다
그 뒤로 가구 디자인을 하는 동기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마침 내가 전시했던 공간에서 생목 나무 가구를 만드시는 작가의 전시가 있어 함께 가기도 했다.
나중에 작가님의 작업실도 함께 방문하며 여러 번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인류학이 무엇인지 처음 물어봤다
내 학부 때 디자인 교수님은 종종 ‘나중에 인류학을 공부해야지 ‘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인류에 대한 학문인가 정도로만 두리뭉실하게 생각했다.
사회학과 인류학의 가장 큰 차이는
‘거리감‘ 에 있다. 내가 바라보는 그 현상을 멀리서 있는 그대로 관찰할 것인지 혹은 그것을 가까이 분석할 것인지
현상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인류학이다.
관조적 시선이라고 느꼈다.
나는 디자인과로 대학에 입학해서 2학년 때 회화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첫 회화 수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있다.
디자인과 회화과의 가장 큰 차이점.
인류학이 순수 예술이라면, 사회학이 디자인이다.
나는 회화과 수업에서 첫 과제를 하며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 과제가 힘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다음 주가 돌아와 발표를 해야 한다니… 나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답 혹은 좋은 해결방안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며 발표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에 자책하고 있었다. 발표를 어찌어찌 끝내고 교수님의 한마디가 띵하고 마음에 와서 박혔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를 제기한 것 까지가 충분한 작업이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것이 변화하지 않았다. 원래 있던 문제를 가지고 온 것 밖에는, 그 뒤 아무것도 나로 인해 바뀌지 않았다. 그럼 무슨 의미가 있으리.
아무것도 못해온 것이라 생각했던 내 과제는
다 해온 과제, 아니 더 해온 과제였던 것이다.
그 뒤로 3학년, 4학년, 추가학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며 대학생의 막바지가 되어서는 그때의 생각이 다르게 이해된다.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담론 형성의 길을 여는 것’
어휘가 있다면 Speculative Design이었다.
한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던 <사변적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고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
디자인을 할 때에도 문제해결을 위해 쫓아가지만 결국 본질적 문제 해결은 되지 못할 때가 있다.
오히려 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람들과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입에 오르내리며 잔잔한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더 큰 맥락에서의 해결이 되기도 한다.
회화과 수업을 처음 듣던 2학년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응시하기, 관조하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라는 행동에 가치를 둔다.
그런 점에서 인류학자 클로이가 말한 인류학과 사회학의 차이가 더 와닿았다.
그전의 나라면 문제해결이 아니라 그냥 그 현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뭐가 바뀌겠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 현상을 관찰하기’가 그 본질을 응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블램 플루서의 현상학 시론 <몸짓들>을 보며
현상학이 ‘현상 그대로 그 자체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이라던데 왜 많은 유명하고 생각 많은 사람들이 현상학에 대해 말하는지도 알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