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 나에게 말을 걸다. 더 옅어지기 전에.
결혼하면서 제가 자란 동네를 떠나 처가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무래도 육아에 도움을 받으려면, 처가에 가까이 있는 편이 여러 모로 편하더라구요.
아내가 시어머니와 함께 육아를 하는 것보다는
친정엄마와 함께 육아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덜 할 테니까요.
처가 근처로 오니,
"친구"가 근처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
1. 육아를 하면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고
2. 저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회사 동료들은 저를 ENFP 로 평가하더라구요.
그런데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습니다.
물론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긴 합니다만,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시절들을 친구 없이 보낸 것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잘 지냈고, 학교를 마친 후에는 따로 연락해서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연락을 끊게 된 계기가 세 가지였습니다.
1. 수능을 마친 연말, 술 취한 친구들의 모습
수능을 마치고, 그 해 연말이 지나서 "성인"이 되던 그 날 밤.
친구들이 술집으로 불러냈습니다.
다들 술에 익숙한 척하며 한 잔 두 잔 마시더니, 바닥에 토를 하고 정신 못 차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극심한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어렵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로 이 친구들의 술자리 초대에 가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2. 나의 지방대학 진학
저는 목동에서 자랐습니다. 다들 학업에 대한 열정도 있고 욕심도 있는 친구들이었지요.
저는 반에서 중간정도 수준의 성적만 늘 유지했습니다. 딱히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지 못 했죠.
나중에 이야기 해보겠지만,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습니다.
수능시험 결과, 수학은 6등급을 맞았으니까요. 심지어 수학을 다시 공부하기가 싫어서 "재수" 보다는 "편입"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지방대학교로 진학을 합니다.
지방 대학교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2년 다니고 편입을 해서 서울로 들어오겠다는 "계획"이었지요.
지방대학교로 진학하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하면서도, 연/고대 진학한 친구들에게 괜한 질투심으로 또 연락을 끊어버리게 됩니다. 참 성숙하지 못 한 모습이었죠.
하지만 반면에, 그렇게 진학했던 지방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어버렸습니다.
3. 오랜 만에 만난 친구,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요청하다
한참 취업준비를 하던, 아직 대학생이던 시기.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연락이 왔습니다. 잘 지내냐, 오랜만에 한 번 만나자.
반가운 마음에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첫 장소는 뭔가 클럽 느낌의 술집이었습니다. 간단한 과일 안주와 어두운 조명, 술병들이 들어왔죠.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고, 시끄럽고 쿵쿵 거리는 음악소리에 연신 머리가 울렸습니다.
친구 녀석들은 술을 먹고, 저는 콜라만 마셨습니다. 그렇게 2차로 노래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한 녀석이 갑자기 옆 방으로 가더니 "여기 도우미 있는데 부르자" 며 당당하게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던 친구녀석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확신이 섰습니다.
'아 이 친구들과는 어울리는게 어렵겠다.'
그렇게 다시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
갑자기 어린 시절의 향수가 그리워지며 친구 녀석들의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들에게 연락도 해보고,
카카오톡에서 오래된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저는, 과거 한 켠에 머물러 있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반갑다, 잘 지내냐" 고는 했지만,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었어요.
한 녀석은 약사로, 한 녀석은 정통 대기업에서 외제차를 몰고, 한 녀석은 의사가 되었고.
그리고 자기들끼리는 또 끈끈하게 연락이 잘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 갑작스러운 과거의 "나" 가 등장해,
그 친구들에게 다가가도 반갑지는 않은 만남이 되는 것 같았어요.
나는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지만, 사실 그 녀석들이 그리웠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나의 어린 시기가 그리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시기가 그리운 것은, 지금 늙어가는 부모님 모습을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 지금에 충실하고 지금 내 사람들과 잘 지내면 그것으로 되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를 억지로 붙잡으려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다.
인연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