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빚이 젤 무서워… 생계부양자로 뛰어들다
형편이 조금씩 나아져서 월곡동 금호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았어. 83년에 광주에 올라온 뒤로 그때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거야.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느그 아빠가 군대에 갔다가 첫 휴가를 나왔는데, “진짜 우리 집이냐?”고 몇 번을 물어봐. 하하.
그런데 월곡동서 화정동까지 시내버스 타고 출퇴근할라믄 힘들기도 하고, 갈수록 나 혼자는 더 이상 세탁소를 할 수가 없겄더라고. 결국 다른 사람한테 넘겨 불고 10년 넘게 해 오던 세탁소는 정리했지.
그래도 놀고만 있을 수는 없제. 마침 월곡동에 바느질하는 공장이 생겨서, 거그를 댕기면서 바느질을 했어. 그 집서 하다가, 또 다른 집서 하다가, 또 다른 집에 가서 하다….
느그 아빠가 군대에 있어서 등록금 들어갈 일 없다 본께, 그때 얼마 안 되지만 여윳돈도 쪼깐(조금) 있었어. 너희 할아버지가 부동산을 하니까 좋은 매물이 나와서 다른 사람이랑 돈 보태서 함평 나산면에 큰 땅도 하나 샀어. 거의 2만 평 가까운 엄청 큰 땅이었거든. 누가 봐도 욕심 낼만 했제.
근디 사실 좀 무리한 것이긴 했지. 그러느라고 있는 돈에다 또 여기저기서 빌리고 해서 모든 걸 거기다 바쳤제. 남의 돈 빌려 산 것이긴 해도 그 땅만 생각하믄 일을 해도 어찌나 재미지던지… 피곤한 것도 금방 잊어버렸어. 꼭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이더라고. 하하.
그런데 사람 욕심이 끝이 없드라. 또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각화동에 있는 상가 건물이 경매로 나왔는데, 느그 할아버지가 그 건물을 몇 사람 같이해서 기어코 경매로 낙찰받겠다는 거야. 자그마치 십 몇 억인가 20억인가 그래. 그때 내가 말겼지(말렸지). 우리 형편에 너무 터무니없다고.
우리는 가게 전세금이라도 있지만, 같이 투자하기로 한 사람들은 돈도 없었어. 근디 할아버지가 순하고 인심은 안 잃고 사는 사람이다 본께, 무조건 낙찰만 받으면 큰돈이 된다고 할아버지를 부추긴 거제. 위치도 농산물 공판장 바로 앞에 있고, 점포도 많아서 경매만 받으면 문제없다는 거야.
근디 그 무렵에 내 꿈에 선몽(현몽, 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남)이 나타나드라고. 나는 언제나 무슨 일 있으면 꿈을 낀디, 희한하게도 대체로 맞드라고. 어느 날 저녁 꿈을 꿨는디, 제사상이 우수수 다 깨지고 막 엎어져 분 거야. 근께 그때 어떻게든 말겼어야 했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돈이 부족하다”고 자꾸 그런 말을 해 쌌더라고. 그동안 내가 어찌고 통장을 몰래 감치면서(감추면서) 600만 원을 따로 모아놨는디, 결국 다 드려부렀어…….
또 한 번은 시골에 있는 논을 팔아서 돈 500만 원을 갖고 왔는데, 그 돈도 부동산 같이 한 사람한테 건네준다는 거야. 그때 내가 “그러지 말고 애들도 크고 아파트가 좁으니까 조금 더 큰 데로 이사 갑시다” 그랬지. 근디 그 돈도 결국 그 사람한테 줘버렸어. 그 사람 말만 믿고 여그서 저그서 빚내서 싹다 갖다 바친 거지.
느그 작은아버지 군대 보내고 결국 일이 터져부렀제. 이래서 돈, 저래서 또 돈, 돈만 계속 들어가는데, 같이 투자하기로 한 사람들은 뒤로 쏙 빠져 버리고 할아버지만 계속 돈을 댄 거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아이엠에프(IMF) 때라 은행 이자가 얼마나 높았겄어? 감당이 안 되제. 그래서 날마다 돈 독촉에 시달렸당께… 깡패 같은 사람들이 건물 넘기라고 집까지 쫓아와서 협박하기도 하고….
앞으로 살 일을 생각하니 참말로 기가 맥힌 거야. 느그 큰고모 시집가고, 너희 아빠는 대학원 졸업하고 아직 취직도 안 한 상태고, 작은 아빠는 군대에 가 있지만 아직 뒷바라지해야 할 자식이 셋이나 된디 앞으로 어찌고 살 것인지를 생각한께…….
자식들 알까 봐서 몰래 방으로 와 갖고, 솜이불 뻑뻑 둘러쓰고 울었어. (눈물을 보인다) 그랬더니 느그 은영이 고모가 쫓아오더라고. “엄마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그러더라고. 다달이 이자는 나가지, 그때는 빚만 없으면 살겄다 했지. 세상에 빚이 젤 무서워.
그래도 ‘꼭 좋은 날만 있을 것이냐. 에라, 이 시기 넘어서면 또 좋은 날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했지…. 오로지 자식들한테 피해 안 가게끔 해야겄다는 생각으로만 살았제, 혼자만 같으믄 천 리라도 도망가 부렀어. 사람들 보기도 창피하고, 막막하고… 아이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