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세탁소 단칸방 살림살이
자식들 키우는 게 늘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아쉽게 느껴지는 일도 있어요?
아이고… 그러제. 내가 즈그들(자기들) 원대로 못 해준 것이 마음 아프지.
느그 큰고모가 대학교 졸업한 뒤로 대전에 취업 자리가 생겼어. 근디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인디, 객지에다 못 내보내겄는 거야. 내가 애들 어릴 때도 남의 집 가서 밥 한 끄니(끼) 묵는 꼴을 못 봤거든. 다른 집 자식들까지 밥 챙겨줄라믄 아무래도 성가실 텐디, 내 귀한 자슥을 남한테 못 맡기제. 그러고 참말로 귀하게 키웠거든. 괜히 거그 가믄 남자들이라도 건들까 숲고, 어디 정 붙일 디도 없을 것인디… 그런 맘만 드는 거야. 근께 내가 그때 너무나 어두웠지….
내 말에 느그 고모가 결국엔 광주에 있는 회사에 다니더라고. 거기서 좀 일하다가 “1년만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을 볼란다”고 그러는디, 동생들이 학교를 계속 올라가고 있는 바람에 저 공부를 못 시켜줬어. 그러니까 혼자 서울 올라가서 일주일을 집에도 안 들어오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더라고. 글더니 일주일 만에 국가자격증을 따 갖고 온 거야. 그럴 줄 알았으믄 공무원 시험 1년이라도 더 시켜볼 건디 그랬당께…….
느그 막둥이 작은아버지도 그랬어. 대학교 졸업 때가 돌아오니까 미용을 한 번 해볼란다 그래. 느그 작은 아빠가 깔끔하고 손이 좀 빠르거든. 딱 미용 감이었어. 근데 그때는 “남자가 뭔 그런 것을 다 한다냐” 하고 내가 두 번 정도 호통쳤지. 그런께 또 순해 갖고 고집 안 부리고 딱 접드라고.
근디 한 해 두 해 가다 보니까 생각이 조금씩 바뀌드만. 내가 남자가 하는 미장원에도 가보고 했거든. 그런 것들을 보다 본께 ‘아, 이것이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그때라도 뒤늦게 갈치고 싶었는디, 그때는 느그 작은 아빠가 이미 30살이 넘었을 때였어. 집안에 내종(시부모의 형제자매) 시누가 그때 미장원을 해서 물어보니까 남자는 일찍 배워야 된다고, 좀 늦었다고 글드라고… 옛말에 '배움이 없으면 사회생활이라도 많이 하라' 갰는데 너무나 후회스러워…….
내가 언제 한 번 느그 작은아버지한테 물어봤어. “너는 얼마나 엄마를 원망했냐?”고.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어. 내가 엄마 말을 무시하고 할라믄 할 수도 있었을 건디, 나도 당돌치(당돌하지) 못 헌께 엄마 말에 수긍하고 말았제” 그러더라고… 막둥이 생각만 하믄 미안한 마음이지.
근께 뭣이든 세월에 둘려 산다니까… 우리 사남매한테 원대로 못해준 것이 가슴 아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