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세탁소 단칸방 살림살이
화정동으로 이사를 가서도 남의 집 가게 하나 얻어서 세탁소 하면서 가게 딸린 방에서 살았어. 거그서는 7년간 했지. 그땐 나 혼자 세탁소를 허고, 할아버지는 몇 년 뒤에 부동산업에 뛰어들었어.
세탁소 하면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할아버지한테 부동산 같이 하자고 꼬신 거지. 그 사람은 입 주변이 좋은데 자기가 배운 것이 워낙 없다 보니까 혼자서는 힘들고, 근디 할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글씨체도 좋은께 그랬겄제.
그때는 형편이 차츰 나아져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할아버지 차를 처음 사 봤어. (미소를 짓는다)
근데 나 혼자 세탁소 할라니까 영 힘든 거야. 혼자서 배달도 해야 되고. 근께 내가 바느질 다 해 놓으면 할아버지가 퇴근하고 와서 옷을 데려야(다려야) 쓴디, 엄청 고집이 세 갖고 말을 안 들어. 그래서 스트레스 엄청 받았제.
그렇다고 가게에서 싸우기를 했겄어? 부부가 그렇게 가정에서 큰 소리 나면 사람들이 좋게 안 봤거든. 자식들 본받을까 봐 애들 없을 때만 싸우고, 애들 오면 내가 울다가도 일부러 웃어. 그믄 느그 할아버지는 나보고 미쳤는갑다고 그래. 그런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았어….
그 뒤로 내가 세탁소 끝나면 느그 할아버지하고 같이 허는 업은 절대 안 한다고 각오를 했지.
그때 우리 동서네 친정이 광주 비아동이었거든? 한참 수박 농사를 많이 하드라고. 근디 한 번은 우리 집 앞에 수박 갖다 놓고 팔아도 되겠냐고 부탁하더라고. 우리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니까 내가 주말에 밥 다 해 믹이고 한동안 도와줬지. 여기서 세탁소 하면, 반대편에서는 수박 팔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은께 안면으로 해서 팔아줬어.
백운동 살 때도 글고 화정동 살 때도 글고, 시골 동네 사람들도 우리 집에 많이 찾아왔어. 동네 사람 중에 도시 나와서 사는 사람은 우리 집뿐이었거든. 자식들 방 얻어준다고 오제, 누구 병문안 왔다고 오제, 누구 자식 들른다고 오제… 무슨 일 보러 광주 오면 항상 우리 집에 들렀어. 말하자면 사랑방이었제.
단칸방이어도 고향 사람들이니까 서로 이물없고(허물없고), 그 참에 고향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 놀다 가시라고 했지. 없는 반찬이어도 밥 한 끼 맥여서 보내면 내 마음이 흐뭇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