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세탁소 단칸방 살림살이
금정(시가)이 그리울 때도 있었냐고?
아니제, 그런 마음 전혀 없었어. '객지에 가 갖고 내가 어쩌든이 성공해 갖고 고향에 와야지' 그런 마음만 먹었지. 객지 생활도 해보고, 돈 좀 벌어서 늙어서라도 같은 시골 살아도 조금 더 누리면서 살아보고 싶었어. 시골에서는 부지런히 해도 그 일이 그 일이잖아. 아무리 논이 있다고 해도 논 좀 벌어갖고 자식들을 광주서 어떻게 갈쳤겄냐. 시골에서 삼서 흙이고 먼지고 그런 것이 정말 싫었거든….
광주에 와서 사니까 깨끗한 환경 자체가 너무나 좋아. 왜 내가 시골에 묻혀서 아무 비전 없이 살았을까… 생각할수록 너무 어둡게 살았어. 막상 여기와 살아보니까 여가 또 고향이더라고. 하하. 노래도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하드끼 딱 여가 그랬지.
처음에 백운동서 세탁소 할 때 이웃집 상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어. 나는 세탁소를 하고, 다른 한 집은 식당이고, 또 다른 한 집은 꽃집이야. 그 꽃집이 동네 사람들 사랑방이나 다름없었지. 나도 거그서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바느질도 하고. 거기서 사람들끼리 뭣을 묵으면 느그 작은아버지가 와갖고 “엄마 빨리 오라고, 사람들이 다 먹어 간다고”. 아하하핳.
그때 경찰서장이 우리 옆집서 살았는디, 그 서장 사모님이 인물이 좋았어. 가끔씩 우리 세탁소에 찾아와서 베개 호지(홑청, 요나 이불 따위의 겉에 씌우는 홑겹으로 된 껍데기)를 빨아서 풀을 맥여 주라고 그랬어.
옛날에는 베개 호지라고, 베개 우게(위에) 한 껍데기를 더 입혔거든. 그 광목천(무늬 없는 면직물의 일종)을 빤 다음에, 풀을 해서(세탁한 천에 쌀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풀을 먹여 빳빳하게 만드는 작업) 반들반들해지게 다듬잇돌 위에 올리고 방망이로 뚜드리는 거야. 그러고 나서 다리미로 싹 다려놓으면 천에서 윤이 나는데, 그게 그렇게 좋다고 너무 맘에 들어 하드라고.
한 번씩 거그 며느리가 나한테 와서 울면서 하소연도 하고 그랬어. 거그 사모님이 다른 며느리 얻을 때까지 그 며느리를 집에 데꼬 살았거든. 근께 그 며느리도 나처럼 시집살이를 한 거제. 근데 거기는 학교 댕기다가 결혼해서 살림을 못했거덩. 근데 거그 사모님이 며느리한테도 한 번씩 베개 호지 빨아서 풀 맥이라고 시켰는데, 그걸 자기가 혼자 할 줄 모른께 나한테 와갖고 몰래 해달라고 하기도 했어.
내가 거그서 세탁소를 3년 정도 했는데, 건물 주인이 집안 사정 때매 그 집을 팔게 되았다고 집을 비워주라는 거야… 앞으로 이를 어째야 되나 걱정했는데, 보니까 세탁소 업자들끼리 모임이 있드라고. 마침 화정동서 세탁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부득이하게 그만둔다고 해서, 그럼 내가 거그를 들어간다고 했제.
그 경찰서장 사모님이 나를 얼마나 좋게 봤든고, "젊은 어른이 이 동네서 살아야 되는데 이사간다"고 엄청 서운해라 하셨어. 내가 그때만 해도 37살이었는데, '젊은 어른'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하. 뿌듯했지.
타향이어도 이웃 사람들이 언능 정을 베푸니까 다 좋더라. 지금도 보고 자운디, 그때는 전화기가 없을 때여서 영영 이러고 못 찾은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