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나오긴 했지만

3장 세탁소 단칸방 살림살이

by 이수영
도시 생활 하려면 처음에 돈이 좀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어요?


시댁이 시골에서 먹고는 살았는데, 이래저래 살림이 줄었었지. 어른들 말로는 큰 시누 장사 밑천 대줬제, 집안에 아픈 사람 있제, 돌아가신 사람 있제, 십 년 만에 살림이 움스러니 쏟아져 들어가 부렀다개. 그 후로 십 년 정도 사니까 인자 좀 더 나아지더라고. 그 판에 아끼고 아껴서 모은 여윳돈이 350만 원 정도 있었어. 빚 안 내고 논 안 팔고 모은 그 돈 갖고 객지에 발을 디딘 거야.


근데 막상 와보니까 그놈 갖고는 도저히 가게 한 칸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시아버지가 가게 얻으라면서 논 서 마지기(600평, 약 2천 제곱미터)를 팔아갖고, 돈 100만 원을 주시더라. 그렇게 해서 겨우 450만 원을 갖고 광주로 왔었지.


광주로 온께 인제 양동 사는 친정 오빠가 느그 할아버지 하고 가게를 보러 다녔어. 마침 백운동에 세탁소 자리가 한 반데(군데) 났다더라고. 막상 광주 나왔지만 다른 재주는 없고, 그래도 바느질은 해 왔던 거니까 그거라도 해 보자 싶었지. 그래갖고 세탁소를 해보자 하고, 가게 주인한테 익숙해질 때까지 한 달만 가르쳐 달라 했지. 그리고 주인 앞에서 바느질을 해봤어. 그랬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오메, 아주머니는 두 번 가르쳐줄 것 없겄소. 영 잘하요” 그러드라고.


시집오기 전에 큰집에 미싱기가 있었어. 그 통에 틈나는 대로 가서 미싱을 배웠지. 세탁소 일 중에서도 바느질해서 지퍼 다는 것이 젤 어려와. 처음에 주인아주머니가 갈쳐 주면서 지퍼를 한 번 달아보라 하드라고. 그래서 내가 금방 딱 달아내니까 “오메, 아줌마 바느질 엄청 잘하겄소. 그냥 하겄소” 그러면서, 한 이틀 해주고는 나한테 바로 넘겨줬어. 이제 그때부터 할아버지랑 둘이 세탁소를 운영했지. 할아버지가 다림질하고, 나는 바느질하고.


그때는 한 달에 35만 원, 40만 원 남짓 벌었어. 그 푼돈을 금쪽같이 모을라고 시골서 쌀 갖다 먹으면서 악착같이 살았제. 느그 고모랑 아빠랑은 김치에다 계란후라이 하나면 딱 끝나. 느그 막둥이 작은아버지 네 살 때 광주 올라왔는디, 하루에 핫도그 오십 원짜리 하나만 사주면 그걸로 넘어가고.


처음으로 돈 벌어본 기분은 어땠어요?
도시로 나오면서 해 보고 싶은 여가생활 같은 것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 느그 아빠 고등학교 가던 해부터 도시에다 발을 디뎠으니 돈이 오직 들어가냐. 글고 돈 벌어도 모두 할아버지 것이여. 나는 원래 돈을 모르고 살았으니까 내가 관리해 볼 생각도 못했어. 어서 벌어서 자식들 갈치고, 돈 모으고 오로지 두 가지 목적뿐이야.


그것뿐이다냐. 몇 푼이라도 벌 수 있으면 뭐든 다 해봤지. 마침 동네 사람들끼리 밤 껍데기를 깎는 데가 있더만. 내가 오죽하면 세탁소 마치고 저녁에 거기 가서 밤을 깎았어.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또 주말이면 시골에 농사 지으러 댕겼어. 시골서 농사짓다가 중간에 광주로 왔는데, 시어른 둘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 그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저녁때 세탁소 문 닫고 밤 차 타고 시골로 달려갔지. 그렇게 다님서 다 모 심었제. 모 심고 나면 시아버지가 이제 논에 물 봐주시고… 그렇게 3년을 주말마다 올라 댕겼어. 그러다 시아버지가 병이 나서 그 이듬해 농사는 할 수 없이 동네 사람한테 지으라고 맽겼지.


그때가 85년이었는데, 시아버지가 아프셔 갖고 검사를 하니까 암이더라고. 이미 번져서 두 달밖에 못 산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광주로 모시고 왔어. 옛날에는 큰아들과 큰며느리만 시부모를 모시지, 딸들은 거그도 다 나 같은 세상을 사니까 얼른 친정에 못 와. 사실 막막했지. 가게하랴, 애들 챙기랴, 시아버지 간병하랴 정신이 없었어. 그래도 가시는 날까지는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어.


unnamed.jpg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 생성 이미지


그땐 그렇게 느그 은영이 고모, 막둥이, 나, 느그 할아버지, 시아버지 다섯이서 가게 달린 방 하나에서 살았어. 시아버지한테 약을 드리면 본인은 어떻게든 살아 보시겠다고 잡수기는 한디, 하루하루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그렇게 한 달 정도 있다가 차도도 없다 본께 시아버지가 시골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어. 그래서 느그 할아버지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시골로 같이 내려갔어. 그렇게 내려가시고 보름 뒤에나 돌아가셨지. 그때 시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수의를 싹 만들었어. 시아버지 돌아가신께 몸을 씻겨드리고 수의를 내와서 깨끗이 입혀드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