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1일,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의 인생을 대략이라도 알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처럼 반가운 기색이었다. 경로당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벤치에 잠깐 앉아 쉬고 있다 했다.
“요즘 날도 더운데 계속 밭일하세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안부 인사였지만, 그날은 나 스스로도 알 만큼 속셈이 있는 전화였다. 묻기도 전에 괜히 머쓱해졌고, 조금은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내 생애에 대해서는 일사천리로 말할 수 있제~”
곤란해하지는 않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을까.
중학교에 가고 싶어 혼자 광주로 올라간 일, 열일곱에 엄마를 잃은 시간, 대종갓집 맏며느리로 살며 보낸 세월. 늘 인자하고 단단해 보이던 할머니가 그날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집에 자주 맡겨졌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할머니를 따라 트로트를 부르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면 KBS1 일일 연속극을 함께 보고, ‘9시 뉴스’ 오프닝 소리가 들리면 부모님이 언제 데리러 오나 시계만 들여다보곤 했다. 뉴스가 끝난 이후 이어진 ‘가요무대’까지 보고 가는 날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잠은 늘 우리 집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의 할머니는 그냥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할머니’라는 역할 너머의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어느 대목 하나 놓칠 수 없었지만, 특히 지금의 나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먼저, 할머니가 갓난아기 때 세상을 떠난 언니의 호적을 이어받아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헷갈려한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김정임’이라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김정란’이라고도 했다. 그때도 설명을 들었겠지만, 어린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김정란’이라는 이름은 자연스레 내 기억에서 사라졌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무척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과 출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할머니는 “그 시절엔 그랬어. 별생각 없제.” 하고 웃어넘겼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그렇게 ‘언니의 이름으로’ 80년을 살아온 것이다.
실제로 할머니의 호적을 들여다보았는데, 출생 관계를 파악하느라 한참을 헤맸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할머니는 실제로는 1947년생이지만 두 살 먼저 태어났다가 세상을 떠난 언니의 출생과 이름으로 신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바로 아래 여동생 김영순은 오히려 할머니가 태어난 해로 출생 신고가 되어 있었다. 그 아래 남동생 김을식의 기억에 따르면, 김영순은 자신과 나이 차이가 그리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호적상으로는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셈이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출생 신고를 늦게 하기도 했다지만, 부모 외에는 누구도 정확한 출생일을 알지 못하고, 이제는 확인할 길조차 없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결혼 이야기도 비슷했다. 두 사람의 사랑보다는 조건이 먼저였고, 도시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가 결심의 이유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어떻게 한 번도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은 사람과의 결혼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엔 개인의 의사보다 어른들의 판단이 앞섰고, 결혼은 그렇게 결정되곤 했다. 게다가 결혼과 남편의 지위가 여성들이 사회적 위치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고도 하니, 아주 이해 못 할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건만으로 평생의 동반자를 정해야 했던 그 시절의 방식을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하겠다. 결혼이 곧 이후 삶의 방향을 대부분 결정짓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시집살이 얘기를 들으며 화가 나고 믿기지 않은 대목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신앙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신과 순산을 위해 삼신을 맞이하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 선영에 기도를 올리며,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그 죽음을 조상신으로 받아들이고, 삼 년간 조석상식을 치르는 일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과 관련해, 일종의 믿음이 삶의 구석구석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전래동화 속에서나 ‘삼신할머니’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것이 책 속의 전설로 알고 있었지, 실제 삶에서 간절하게 믿어지고 실천되던 세계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인 줄 알았던 풍습들이 불과 몇 세대 전의 일이라는 사실에, 시간의 간극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