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한 번은 이제 뉘에(누에)를 길러. 너는 뉘에가 뭔지 안가(아는가) 모르겄다.
누에고추요?
응. 누에고치.
뽕나무밭에 뽕을 따러 갔는데, 멀리서 보니까 느그 아버지가 잔등(동네 앞에 있는 동산)에서 동네 친구들이랑 한참 놀고 있더라고. 뽕 따는 건 혼자 해도 되는디, 욕심껏 따다 보면 집에까지 그걸 이고 오는 게 문제여. 예전엔 무거운 걸 들 때 머리에 많이 이고 다녔거든. 근디 푸대(포대)가 꽉 차면 너무 무거워서 옆에서 누가 좀 거들어줘야 머리에 이지, 혼자는 도저히 이지를 못해. 그래서 내가 느그 아빠한테 이따가 부르면 와서 도와주라고 했지.
근디 이놈이 안 온 거야. 저도 깜빡 잊어부렀는가는 모르지. 그래서 이제 도와달라고 누구 부를 사람도 없고, 내가 어쩌고 해서 고개가 비틀어질 정도로 높은 데까지 혼자 겨우 이고 왔어.
집에 오니까는 시아버지는 소죽 솥에 불을 때고 있고, 느그 아빠도 옆에 같이 앉겄더라고. 시어머니는 술 취해 와 갖고 토해서 이러고 누워 있고. 그래서 내가 “국언아! 너 엄마가 와서 좀 머리에 이어 주라 한께 안 오고 뭐 했냐!” 한 소리 했지.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술 취해 갖고 “나가거라! 내가 밥 할란께 나가라!”하면서 큰소리쳤어. 자기한테 말 못 하고 귀한 손지한테 뭐시라 했다고, 막 내 등을 뚜듬서 도구통(절구통)을 뺏으면서 막 나가라고 그런다마다. 내가 그랬어. "뽕을 많이 따놓은께 무거워서 도저히 일수가 없어 좀 도와달라고 그랬다"고… 내가 소리를 지르겠냐 뭣하겠냐. 찍 소리도 못해 아주…….
나는 참 친정에서 그런 세계를 안 살았거든. 누가 술 마시고 비틀거려 당당한 일 없고… 내가 대종갓집으로 가서 현모양처로 살면서 어른 대우해 주고, 나도 여자에 대한 대접받으면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이 이제 삼천포로 가부렀어. 내가 다 해도 그 마음을 몰라줘. 친정에서 보고 느낀 것은 이런 게 아니었거든.
근께 '내 자식들만큼은 하늘의 별 딴 놈이라도 장손 며느리로 안 줘야지' 그런 마음을 먹었지. 내가 그때부터 가심애피(가슴앓이, 화병)가 와부렀어. 한마디로 신경성 위장병이제. 시어머니도 가슴애피가 있었는디, 며느리를 잘 얻어서 나 덕에 그 병을 낫어부렀다고 소문이 났대. 내가 시집 가 갖고.
그렇게 참고 살다가 한 번은 정말 집을 나갈라고 옷 보퉁이를 싼 적이 있어.
어느 날 저녁밥 해서 차려드렸는디, 술 취해갖고 방에서 나가라고 악을 씀서 “홀애비 딸”이라개. 아무리 술 취했어도 할 말이 따로 있지…….
그래서 내가 이 집에서는 안 살아야 쓰겄다… (울먹인다) 여태껏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디, 이렇게 나를 몰라주면 사는 보람이 없잖아. 느그 은영이 고모가 두 살 땐디, 나갈라고 마음먹은께 자식이어도 보기가 싫어부렀어. “나는 네 부모가 아니다” 하고 밀어 불고 나왔어.
동네 어르신 중에 혼자 사시는 분이 있어. 그때 새벽에 나갈라고 가만히 그 당고모(아버지의 사촌 누이) 집으로 들어가부렀어. 내가 그랬제. “고모, 나 여기 작은 방에서 혼자 잠 안 자고 새벽에 나갈란께 누가 찾으러 와도 암 소리 말고 계십시오.” 그래갖고 빈 방으로 가서 옷 보퉁이로 해갖고 숨고 있어.
느그 할아버지가 밖에 나갔다 온께 내가 안 보이니까 여기저기 찾았나 봐. 근께 또 그 고모가 내가 안타까우니까 말을 다 해분거제. 그때 느그 할아버지가 날 찾아 와서 글드라. “좀만 참아. 나를 보고 결혼했지 않소? 참으면 다 좋은 날이 있을 거여.” 나는 맞받아쳤제. “아니, 나갈라요. 내가 배우지는 못했지만 어디로 가든 잘 살 수가 있은께, 당신은 여기서 잘 사시요.”
근디 어쩌고 자식을 놔두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그때 할아버지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와닿았지, 그 외에는 내 가슴에 와 닫은 말이 하나도 없어. 느그 고모도 그런 소리 전혀 몰라. 누구한테든 얘기해 본 적 없는데 그 말을 인자 꺼냈다. 내 생전에 상처지…….
시어머니가 늘 그런 건 아니었어. 항상 “니가 한 것은 맛있다” 그런 말도 하고. 정이 많지는 않지만 날 미워허든 안 했지. 근데 그렇게 술을 잡수고 몸가름(몸가림)을 못 허고, 애간장을… 그놈의 애간장을 태웠지. 그게 다 병이 된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