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금정서 살 때 동네 사람들이 우리 또래가 많더라고. 저녁이면 모여서 놀았어.
그러다 계를 하나 묻었어(계모임을 만들었어). 그때는 돈이 없은께 나락(벼) 20근씩을 걷었어. 시아버지가 그러라고 다 주더라고. 그 나락을 팔아서 그 돈으로 1년에 한두 번씩인가 계 모임을 했어.
언제는 한 번 여름에 영암 월출산으로 놀러 갈려고 한디, 그때는 버스도 드물 때여. 아침에 가는 차를 놓치면 이제 낮에사 가야 돼. 모처럼 바람 쐬러 가는 날이라 미리 영암 장에 나가서 음식 재료도 사다 놓고, 놀러 가서 뭐 해 먹는다고 동네 각시들이 솥단지까지 보(보자기)에다 싸고 며칠 전부터 모두 들떠 있었지.
그날 차 탈 시간이 됐는데도 얼른 못 나가겄는 거야. 그때 시아버지가 아침에 소 풀을 비러 간 참이었어. 내가 얼른 시아버지 밥 차려드리고 나가야 된디, 시아버지가 안 오시는 거야. 차 시간은 다가오지, 사람들이 뻔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안디, 속으로 얼마나 애가 탈 것이냐.
글면 시어머니라도 ‘아야, 내가 느그 시아버지 오면 밥 차려드릴란께 가그라’ 이렇게 좀 해야 쓴데, 가란 말을 안 하니 내가 어쩌고 갈 것이냐…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래서 그 차를 놓쳐부렀어…….
근디 세상에 각시들이 나만 혼자 놔두고 어떻게 가겠냐고 그 버스를 안 타고 날 끝까지 기다려 준 거야. 그래서 다 같이 짐을 이고 지고 몇십 리를 걸어서 월출산까지 갔지. 애기도 있는 걸 업고 그렇고 다 그 재를 넘어갔어. 그때 넘 고마웠지. 다들 날 짠해라 하고… 그땐 시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