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내 마음대로 못 키우고

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by 이수영
자식 키우면서 시집살이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어떤 거였어요?


자식들 아플 때 내 마음대로 병원에 못 데꼬 댕긴 거. (시부모가) 아주 아픈 거 아니면 앵간한(웬만한) 것은 병원 안 데꼬 갔어.


느그 작은 고모(이은영)가 갓난 애기 때 저녁 내내 기침을 했어. 그땐 ‘백일지침(백일기침, 백일해)’이라 해서 백일이 지나야 낫는다고 했제. 그래서 병원도 안 가고, 약도 안 해줬어. 근디 애기가 저녁이믄 뺏뺏하니 아주 말라가꼬…….


한 번은 시어머니가 병원에 데려가자고 했는디, 그 말에 시아버지가 손찌검을 한 거야. 애기 데꼬 병원을 간다 그런다고⚹. 나는 아주 짠해서 죽고 못 살겄는디… 그런다 해서 애기 맛있는 음식 하나를 맥여보길 했겠어? 어른하고 똑같지.


근께 내가 느그 고모한테 그 소릴 지금도 못해, 너무 미안해갖고…. 지금도 느그 고모가 기침을 해갖고 못 낫으면 ‘오메, 그때 병이 돋았는고’ 하며 가슴 미어지게 그때 생각이 나. 내 자식을 내 마음대로 못 키우는 게 한이 되지.


한 번은 가마니를 부지런히 짜서 고놈 팔아갖고 느그 아버지 학교 갈 때 좋은 양복 한번 해 줄라고 했어. 그때 가마니를 짜서 시어머니랑 둘이 재를 넘어서 영암 장으로 이고 갔어. 근데 가마니 팔아서 번 돈을 시어머니가 나한테는 한 푼도 안 준거야. 나는 느그 아버지 학교 입학할 때 양복 좋은 놈 사 입힐라 했는데…….


그럼 그때 시어머니께 양복 사 입힐 돈 좀 달라고 말씀해 보시지 그랬어요.


그때 내가 달라고 했을 거야. 근디 다른 디다 쓴다고 한 거야… 그래서 내가 '다시는 가마니 안 짜야지' 허고 가마니 기계를 저 나루 밑에다 던져부렀어. '다시는 내가 가마니 짠가 봐라' 내 속으로만 그러고.


그래도 내가 어쩌고 했던가, 느그 아빠 양복 기언히(기어이) 입혀갖고 학교 보냈어. 옷도, 가방도, 모자도 다 광주서 사다가 입히고. 어쩌든이 우리 자식들 훌륭하니 키운다는 마음으로 살았지. 부모로서 내가 못 받았던 거 내 자식들한테 다 해주고 싶었어.


월간 보이스카우트(1979년 1월호)/출처: 알라딘 온라인 중고

그때 애기들은 내가 젖만 주지, 키우기는 어른들이 키웠어. 애들 국민학교 댕길 때 운동회를 가거나 소풍을 가거나 그러면 두루마리 한복 입고 시아버지가 다 따라댕겨. 나는 근께 학교를 가 보도 못해. 그때는 사회부(보이 스카우트; Boy Scout)라 해 갖고 회사복(유니폼)만이로 옷도 나오고 그런 것이 있었어. 거기서 방학이면 또 어디 여행을 다녀온디, 그것조차도 할아버지가 갔다 와. 병원도 내 자슥이니까 내가 가야 쓸 것 아니냐. 근데 자기네들이 데꼬 가불고… 나 일하라고.


느그 큰고모(이선희)가 고생 많이 했다. 막둥이를 업고, 은영이를 걸리고(스스로 걷게 하고) (막둥이) 젖 맥이러 들에까지 와. 그럼 내가 잠깐 애기 젖 맥이고. 근께 느그 큰고모가 엄청 일을 많이 도와줬어. 학교 가믄 가방 던져 불고 와서 설거지 해야 되고….




작은 딸(이은영)의 국민학교 졸업식(1987). 할머니와 가운데는 작은 아들(이정무)





* 백일해는 보르데텔라 균에 의한 호흡기 질환으로, 1세 미만 영아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1973년 8월 22일 자《동아일보,「백일해 發病(발병) 어린이 急增(급증)」》는 “백일해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생명까지 앗기는 사례가 잇따르자 일부 병원과 부모들은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며, 서울에서만 “9명의 어린이가 심한 부작용을 앓다가 2명이 숨졌다”는 소아과학회의 발표를 전했다.

이러한 접종 공포와 ‘백일은 앓아야 낫는다’는 민간 인식이 맞물려, 당시 많은 가정이 병원 대신 민간요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