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다 해서 하루도 누웠어 본 일 없어

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by 이수영

처음 임신했을 때?

나는 임신했다는 느낌이 없었어. 근데 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여. 임신한다 해서 하루도 누웠어 본 일 없고, 애기 낳을 때까지는 꼼짝없이 밭을 매야 됐어.


막둥이 고모 임신했을 때는 엎져서 모 심느라 막 배가 물에 젖어. 모 심는데 배가 이렇고 (아이 때문에) 불러갖고 발을 띠어 옮길라면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그렇게 나와.

느그 아버지 낳을 때는 내가 힘들게 낳았어. 전날 석양부터 그래갖고 다음 날 낮이 되아도 안 나오고….


면 소재지에 애 낳을 때 도와주는 여자 산파(아이를 낳을 때에, 아이를 받고 산모를 도와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여자)가 있었는갑드만. 내가 죽겄은께 누가 그분을 델러 갔어. 근데 애가 머리만 비추고 안 나오니까 애기를 당겼나 봐. 그러니까 애가 시푸래져부렀드라개(산소 부족으로 창백해져 버렸어). 그래갖고 애기를 거꾸로 잡고 때리니까, 그때서야 “응애” 소리를 한께 인자 살았구나 그랬다개. 첨엔 다 죽은 줄 알았다개.


아궁이에 불때기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내가 느그 아빠 힘들게 낳아 놓고 기진맥진 해져 부렸어. 여름인데도 상태가 안 좋을라고 막 한숙(추운 기운)이 들어. 이런 빼 매대까지(뼈 마디까지) 쏙쏙 에림서 추웠어. 시골집에서 소를 키우니까 불을 때서 소밥(소죽, 소에게 먹이려고 짚, 콩, 풀 따위를 섞어 끓인 죽)을 맨들었거든. 근께 불을 때니까 방이 항상 뜨구왔어.






불만 면 되는 줄 알고 막 땠는데, 나중에는 여기 등거리 살이 다 디어 갖고 부커부린 거야(부어버린 거야). 그래도 추와. 몸살감기처럼 그렇고 고생을 했어. 그것이 하루 이틀 그런 것이 아니여. 근께 또 당골(무당) 데려다 빌고… 그러니까 느그 아빠 낳고 한 달 정도를 밖에 못 나갔어.


귀한 손자 낳아논께 시어머니가 잘해줬어. 외아들 있는 집안에서 아들 또 장손으로 낳았다고 동네가 아주 경사였제. 날 새면 내가 시아버지한테 애기 맡기고 밥을 하면, 시아버지가 좋아갖고 “허허허허” 하고 애기를 받아.


처음에 남자 애기 아닐까 봐 말도 못 하게 불안했어. 어른들이 여자 애기도 이뻐라고는 해. 근데 별로 잔 시원찮해. 여기 집안에 남자들 서(셋)이고 여자가 일곱인디, 또 여자 애기 낳아노면 야단나 부러. 아하하핳. 그때는 아들, 딸 구별이 더 심했지. 근께 느그 할아버지, 느그 아버지도 갓게(귀하게) 살아부렀잖아.


근디 딸들은 또 소랍게(수월하게) 낳더라? 그때 들에는 안 가도, 일주일 쉬다가 나와서 원래처럼 다시 내가 밥을 했지. 내가 조심하고 산 것이 시집살이더라고… 죽겄어도 내가 할 일은 허고 살아야 돼.


일주일 뒤에 밥상을 다 차리신 거면, 사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한 거네요?


그렇긴 하지만 나는 좀이라도 쉬었지, 시어머니 없는 사람들은 애기 낳고 막 나와서 밭에 나가 일했어.


며칠 전에 경로당에서 화투침서 어떤 언니가 자기 시집살이했던 얘기를 하는데, 어째 애기 낳을 달이 돌아온디 배에서 애기가 안 놀더라냐. 어쩌다 한 번씩 꿈틀거리고. 근데 애기가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던가, 낳아갖고 죽어부렀대… 근께 시어머니가 죽은 애기를 낳았다면서, 며느리한테 애기 막 낳자마자 밭에 가서 밭 매라고 하더라그냐. 옛날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