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시할머니가 71년도에 돌아가시고, 시할아버지는 그 뒤로 5년 뒤에나 돌아가셨어. 그때는 장례를 집에서 4일간을 치렀어. 그때부터 조석상식을 3년간 한 거지.
시할아버지 형제간들이 7남매인디, 그 7남매가 다 열 식구씩이여. 그 수가 전부 다 와 갖고 4일간 여그 집에서 먹고 자고 그랬어. 마당에 손님을 아주 한없이 받았지.
그런께 동서들이랑 나랑 손님들 먹을 것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제. 마당에 볏짚 깔고 그 우게(위에) 덕석(멍석) 깐 다음에, 손님들 상을 갖다 드렸지. 돼지를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 갖고, 삶아서 수육 해서 손님 대접을 해. 뼈를 푹 고아서 돼지고기 국도 끓이고. 그때는 지금처럼 육개장이 아니라 그런 걸 먹었어.
4일 차 마지막 날에는 마당제라고 마당에다 제사를 지내. 그리고 생여(상여, 장례의 발인 절차에 따라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하는 도구) 나가고. 생인(초상집 상주를 비롯한 손님을 맡는 자녀 등 후손)들이 상복을 다 입고, 산으로 가서 무덤에 묻는 거지.
나는 그 뒤부터 바깥일을 했어. 그런께 농사일을 한 13년이나 했겄다. 시집오기 전에 모 한 폭 안 심어봤어도, 남들 모 몇 년 심어놓는 것보다 더 잘 심는다고 칭찬 들었어.
밭은 여자 몫이여. 논은 남자 몫이고. 여자들이 논에 모만 심어주면 그 뒤로는 남자들 일이야. 밭농사도 일이 많잖아. 남자들이 밭에다 쟁기질해갖고 씨 넣어주면, 그때부터 여자들은 날마지(매일) 밭 매러 댕겨.
밭에다가 목화도 심어보고, 콩, 팥, 고구마 안 심어본 것 없이 다 심었지. 밭이 1,200평이나 됐는데, 시어머니하고 나하고 둘이서 그 밭을 다 매 가꿨지. 밥만 먹으면 밭에서 살았어.
우리 밭에 맬 것이 없으면, 이제 다른 사람이 밭 잔 매주라 하면 가서 도와줘. 글고 그 사람 밭 거의 다 끝나면, 또 우리 밭으로 와서 도와주고 그래. 그것이 '품앗이'야.
다섯여섯 명씩 호미 들고 밭두둑(밭보다 약간 높이 올라와 밭의 경계가 되고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둑) 줄 잡아서 가면 쉬워. 근께 힘든지 모르고 얌얌(이런저런 이야기) 함서 또 그때 나름대로 재미있게 일을 해. 일도 더 잘 되고.
밭이 있는 사람들이나 품앗이 허지,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일이 없잖아. 글면 밭 있는 집에서 밭 매주라 하면 하루 일당 받고 해 줘. 우리는 그런 놉(그날그날 품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많이 사서 했어.
근디 밭일하다 보면 햇빛이 너무 뜨거우니까 미치겄더라고… 처음엔 적응이 안 돼갖고 숨이 얼마나 맥히던지.
그래도 농사일이 더 나았어. 집에서 반찬 여러 가지 것 만들어갖고 상 몇 끼씩 차려 낼라면 그것이 더 힘들어. 집에서 여자들이 하는 일은 일로도 안 쳐주고 노는 것으로 인정이 돼야 불잖아.
차라리 내가 들에 가서 일해버리면 그게 더 편하더라고. 집에서 누가 밥 차려준 거 먹는 게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