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몇 개만 줬더라도…

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by 이수영

밥 해 먹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밭일하고, 밤엔 애들 젖 맥이고. 하루도 노는 참이 없어.


밭일 없으면 집에서도 바느질을 해. 바느질해서 식구들 옷 입혀야 되니까. 겨울이라 그러면 동네에서 다들 가마니(새끼와 짚으로 쳐서 울을 깊게 만들어 곡식 등을 운반하거나 저장하는 용기)를 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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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 왼쪽 이미지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어른들이 있을 때는 쉴 수가 없어, 미안해갖고. 가만히 있으면 불편해. 할 일을 찾아서 해야 좋아라 해. 좀 쉴 때 좀 쉬어가면서 살았으면 좋겠고… 그런 것이 원이었어.


그때 티비가 큰 방에만 있었어. 큰 방에서 티비를 여러고 조금 보고 있으면 시아버지가 막 싫어하는 표정이 나. 그러면 내가 나와 불지.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어. ‘나 하나 참으면 조용할 것’ 하면서 그러고 희생을 하고 살았지…….


집안에 한 번 대사를 치면 한 오십 명씩 모였잖아. 한겨울에 찬물로 그 많은 그릇을 시치면 손등이 쩍쩍 벌어져갖고 피가 나고… 상에다가 반찬 그릇을 놓으면 미끄러워서 막 그릇이 상 위에서 돌아댕겨, 얼어갖고. 혼자 그 많은 밥을 해낼란께 발등에 물이 항상 젖어있었지. 고무신 신은 발이 아주 꽁꽁 얼어서 겨울에 방에 들어가면, 언 발이 그때부터 살살 녹으면서 막 에려.


그래도 시누는 그때 양재 학원을 댕긴다고 털신을 사주고, 내가 그런 것은 당연한 걸로만 생각하고…….


내가 제일로 상처받았던 것이 있어.

설에 작은 집 동서는 시아버지한테 용돈을 받았는데, 나는 그 용돈 한 입 못 받아봤어. 모든 면에서 뒤질 것 없이 자신 있게 살아왔는디, 왜 나는 세뱃돈 하나 받을 자격이 못 되나 생각하니까 너무 서러운 거야. 천 원짜리 몇 개만 줬더라도 내가 그 고마움을 알 것인디… 그때 생각이 나서 지금 설날이면 얼마 안 되더라도 며느리들한테 세뱃돈을 주지.


느그 할아버지도 어른들 밑에 살 때 아무 자유가 없었어. 부모들이 다 갖고 있응께 돈 10원도 몰라.


마을 계모임에서 찍은 사진. 맨 윗줄 가운데가 할아버지, 할머니.


나는 읍내도 안 나가 봤어. 어르신들이 반찬거리 사 오면 밥 해주고… 어쩌다 한 번 나갈 때는 부부 동반해서 계모임 할 때랑 친정 갔다 올 때만. 친정도 많이 가야 일 년에 두 번이나 가는 정도제. 아버지 생일 때랑 엄마 제사 때, 딱 두 번.


내가 시집간 뒤로 처음으로 친정을 간디, 고무신이 떨어진 거야. 그래서 못 신고 가겄는 거야. 부잣집으로 시집간다고 했는디 내가 자존심이 있제.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한테 신 하나 사 신고 갈란께 어른들한테 돈 잔 주라 하라고 했는데, 그 돈을 안 준 거야… 느그 할아버지가 어른들한테 갔는디, "돈 없다"고 한담서 도로 오더라고. 돈 주기 싫어서 그랬겄제. 그 생각하면 또 눈물 나와. 결국 찢어진 채로 친정에 갔다 왔지…….


그래서 내가 어쩌든이 객지로 나갈라 그랬당께. 도시로 나가서 돈 벌어갖고 오믄 그런 것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근께 서울서 돈 벌고 온 사람들한테 나 서울 올라오게끔 말 좀 해주라고 막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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