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 시절의 종갓집 시집살이
결혼해서 느그 할아버지가 잠깐 면 사무소(영암군 금정면사무소)를 댕겼거든. 내가 일을 죽어라고 해도 할아버지가 깨끗허니 옷 입고, 삼천리 자전거 딱 타고 출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드라고.
근디 느그 아버지 초등학교 4학년때든가? 느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위가 터져부렀어. 그래갖고 다니던 면사무소를 그만둬브렀제. 이제 도저히 시골에서는 일을 못해 먹고 살겄는 거야. 나도 몸도 약하고, 시골 일도 많이 안 해 본 사람이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도와주기는 도와줘도 일을 잘 못해. 시골에 삼서도 외아들이라 낫 한 번 안 들어보고. 도저히 저 사람 데꼬는 시골에서 못 살겄다는 것을 느꼈어.
지금도 느그 고모할머니들이 말해. "(부모가) 오빠한테는 아무것도 안 시키고 자기들한테만 뭘 시켰다"고 그런 소리를 해.
차츰차츰 살다가 막내 시누를 여웠는데, 느그 고숙 할아버지(막내 시누의 남편)가 울산에서 현대 중공업 조선소를 다녔어. 막내 시누는 거그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울산은 돈이 흔하다고 하니까, 먹고살 길 없을까 하고 느그 할아버지를 혼자 거기 동생네 집에 보냈지. "성님(형님, 즉 할머니를 지칭)은 뭣이든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나랑 국밥집을 한번 해 보라 그래.
그때 막둥이 네 살 먹었을까. 큰맘 먹고 울산까지 갔지. 근디 가서 보니까 웜메, 시장통이라 근가 사람들이 억양이 커가지고 도저히 말을 알아먹들 못 하겄어… 나는 도저히 여그는 못 살겠다 싶어갖고 두 달 만에 나와 부렀지. 그때가 82년도였을거야.
그런데 나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일을 저질러야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설 쇠고는 이불 보따리, 쌀 가마니 하고 짐을 다 가지고 광주에 있는 친정 오빠네 집으로 왔어. 근데 느그 할아버지가 시골로 다시 가자 그러는 거야. 나는 "아니다"고, “뭣을 허더니 나는 해 먹고살 자신이 있으니까 당신 갈라면 당신 혼자 가시오” 그래 부렀지.
그땐 어른들도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고. 자기 딸이 울산 가서 산 데를 본께 괜찮게 살거등. 아들이 시골에서는 일 해먹을 형편은 못 되고, 또 내가 악착같이 도시에서 살라고 하고 그런께 “느그가 노력하면 살 거다” 이랬제.
그때 내가 당돌하지 안 했으면 광주로 못 가. 내가 돈이 있어, 배움이 있어?
내 고집으로 드디어 광주다 발을 딛게 되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