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노트 2

by 이수영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매번 처음 계획했던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오후에 시작한 인터뷰는 끝날 즈음이면 어느새 저녁 준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시계를 한 번 보고,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 할머니의 쉬는 시간을 내가 빼앗고 있는 건 아닐지 마음이 쓰였다.


인터뷰는 주로 할머니 방에서 이루어졌다. 시가족 이야기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할머니는 거실에 있는 할아버지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하곤 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혼자 거실에 있을 할아버지가 문득 떠올라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일부러 인터뷰 전후로는 할아버지와 주방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안부를 묻곤 했다. 그 시간은 인터뷰의 연장이자,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는 방식이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할머니의 고생은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앓이로 시작된 병들, 허리 골절과 우울증, 불면증까지.

늘 약봉지를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병들은 단순히 노화라기보다, 오랫동안 감내해 온 삶의 흔적처럼 보였다.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들, 삶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비단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성 노인들과 달리, 여성 노인들의 삶은 대체로 비슷한 궤적을 따라왔다. 초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학업을 그만두고,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 자녀를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며 살았다. 이후 여성이 사회로 나가게 되었을 때에도, 기존의 가사와 돌봄 노동 위에 또 다른 일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이런 삶의 경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나는 그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그 시절엔 다들 그랬지’라는 말로 쉽게 지나쳐온 건 아닐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사연들인데도 말이다.


WhatsApp Image 2026-02-16 at 11.56.31 PM (12).jpeg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한 번 멈칫하게 된 순간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할머니가 “이대로 가시면 원통하다”며 “효도하는 시간을 주고 가시면 쓰겄다”고 울었다는 일화였다. 그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긴 세월을 시집살이로 견뎌왔는데도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까. “돌아가실 때 잘해 드리는 것이 효도”라는 말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효도해 온 것 아닌가?


할머니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이상, 이 이야기를 그저 과거의 일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시부모를 모시며 고생해 온 할머니의 시간이 겹쳐지듯, 장남 며느리로 살아온 우리 엄마의 현재와 앞으로의 삶까지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할머니의 손녀이자 엄마의 딸로서, 나는 이 말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후 내용은 브런치북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 2'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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