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
45년생 할머니의 작은 분투

들어가며

by 이수영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진 건, 5년 전 경향신문의 젠더 기획 기사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읽고 난 뒤였다.


농촌 여성들이 하소연할 곳 없어 들판에서 위로를 받고, 고된 시댁살이를 못 이겨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은 나에게 적잖은 혼란을 주었다. 그토록 외로운 세계가 존재하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 한 푼 없어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들의 사정은 몇 번을 읽어도 자꾸만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여성들의 희생이 그저 뒷바라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한 ‘노동’ 임을 깨달은 순간, 우리 할머니의 삶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나는 2022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약 두 시간씩 여덟 차례에 걸쳐 친할머니의 생애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가족 안에서만 공유할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지금의 세대로서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할머니의 경험은 기사 속 농촌 여성들의 삶과 놀라우리만큼 닮아 있었다. 이토록 가혹하고 치열한 생을 알게 된 이상, 가족만의 비밀로 남기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할머니의 이름으로 기록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해서는 안 되는’ 그 시절 여성의 삶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욕심이 커진 탓일까.

방대한 구술을 연재물로 엮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이야기 중 무엇을 남기고 덜어낼지, 사투리와 옛말의 맛을 어디까지 살릴지 고민이 이어졌다. 복잡한 가족관계, 그리고 나조차 생소한 시대적 맥락과 옛 시골의 풍습을 오로지 구술만으로 재구성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조심스러웠던 건, 기록자인 나의 시선이 할머니의 삶에 특정한 해석을 씌우는 건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부담감은 점점 높아졌고, 원고는 진전되지 못한 채 한동안 덮여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흐른 2025년 12월,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며 다시 오래된 파일을 열었다. 더 늦기 전에, 한때 열정을 쏟았던 이 작업을 어떤 형태로든 내 손으로 매듭짓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이 글은 여러 구술 생애사 서적을 참고해 구성했다. 전반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할머니의 구술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할머니의 입말이 지닌 리듬과 정서를 살리고자 사투리를 최대한 유지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설명은 별도의 서술로 곁들였다.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할머니의 마음과 욕망이 가부장제 속 일과 관계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달라져 온 과정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실 이 글을 올리는 마지막까지도 할머니의 실명을 밝혀야 할지, 가명을 써야 할지 고민이 이어졌다. 결국 실명을 쓰기로 매듭 지었지만, 초반에 할머니는 “내가 힘들게 살아온 걸 남들이 알게 되는 게 좀 그렇다”면서, 본인을 드러내기를 내키지 않아 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할머니가 남들을 신경 쓰며 자기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데는 어떠한 사회적 압력이 있으리라. 그렇기에 할머니의 이 진솔한 구술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헌신을 오롯이 알아주는 것, 그것이 손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도리가 아닐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마저 제쳐두었을 삶의 속내를 살피는 일이 할머니에게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동시에 이 기록이 동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욕망을 이해하는 하나의 작은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열일곱에 메꿔야 했던 엄마의 빈자리, 도시 생활과 현모양처의 로망을 품고 맞이한 결혼, 기어코 이겨낸 종갓집 대가족의 시집살이, 용기 내어 결심한 광주 단칸방 살림, 가난의 세월과 노년에도 끝나지 않는 가족 돌봄까지…….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살기 쉽지 않은 하루이지만, 할머니는 나름의 방식대로 80년의 굴곡진 세월을 굽이굽이 헤쳐 나왔다. 이 글이 때로는 뒤돌아봤을 선택들을, 그럼에도 억척스레 이어온 삶의 노고를 조심스레 인정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가족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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