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필사로 나 들여다보기> 10.
어쨌든 나는 타이 그런 것도 매지 않고 피프스 애비뉴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블록 끝에 이르러 젠장 갓돌에서 내려설 때마다 절대 거리 건너편에 다다를 수 없을 거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아무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아, 얼마나 겁나던 지. 상상도 못할 거다. 나는 개처럼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셔츠와 속옷과 그런 게 다 젖었다. 이윽고 나는 다른 걸 하기 시작했다. 블록 끝에 다다를 때마다 동생 알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척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알리, 나 사라지게 놔두지 마. 알리, 나 사라지게 놔두지 마. 알리, 나 사라지게 놔두지마, 제발, 알리"
<호밀밭의 파수꾼> 중...p.294
T.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가 집 안에 물이 가득차고, 자신에게로 물이 가득 들어차오는 것을 느끼면서 공포를 느끼는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없이 꺼지는 느낌은 그 자체로 공포였을 것이다.
하지만 홀든은 그 와중에서 벗어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그리고 그때는 동생 피비가 아닌 알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알리, 나 사라지게 놔 두지 마.'라고...알리가 그렇게 외칠 때 자신이 뭔가를 못해준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알리의 마음도 느꼈을 것이고...이 구절은 각자 어떤 시선에서 읽느냐에 따라...많은 의미를 가져다 준다.
홀든은 스스로 그곳에서 벗어나오는 방법을 터득하고 벗어나고자 했다는 것,
홀든은 이제 이렇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는 것 같다.
수고했다. 정말.
나는 아직 홀든처럼 완전히 울타리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뛰어넘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것이 언제 가능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은 이제 있다.
그러니까, 나도 이제 홀든이 그랬던 것처럼
이 울타리를 뛰어넘는 방법을 이제 알아차린 단계정도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다. 정말...
나는 이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척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누구하고도 빌어먹을 멍청하고 쓸데없는 대화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누가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종이에 써서 나한테 들이밀면 된다. 사람들은 좀 그러다가 곧 겁나게 따분해질 거고 그럼 나는 남은 평생 대화 없이 살 수 있다. 모두 내가 가엾은 귀머거리이지 벙어리 놈이라고 생각하고 가만 내버려 둘거다.
<호밀밭의 파수꾼> 중...p.296
T. 앞서 말한 호밀밭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묻거나 따지는 사람 없이 마냥 뛰어놀 수 있는 곳이었다면, 홀든이 있는 곳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척 해야하는 겨우 살아갈 것 같은 현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렇게 귀머거리, 벙어리로라도 자신이 살아갈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이제 홀든의 긴 여정이 끝이 났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또 홀든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곳은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곳이면서, 또한 그 기나긴 여정을 겪고 내린 선택지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홀든은 충분히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