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문장을 통해 나 들여다보기> 6.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걱정이 없는 거니, 얘야?"
"오, 미래에 대해 걱정이 좀 있죠. 물론이죠. 그럼요. 있어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많지는 않아요. 아마도요.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마도."
"걱정하게 될 거야." 우리의 스펜서가 말했다. "걱정하게 될거다, 아이야. 하지만 걱정하면 그때는 너무 늦을 거야."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듣는 게 좋지 않았다. 내가 꼭 죽거나 그런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주 우울했다.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네 머리에 분별력을 좀 집어넣고 싶구나. 아이야, 너를 도와 주려는 거야. 할 수 있다면 너를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야."
그는 정말로 그랬다. 그걸 알 수 있었다. 단지 우리가 너무 반대편 극단에 가 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
"저기요, 선생님.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저는 괜찮을 거예요. 지금 그냥 그런 단계를 겪고 있을 뿐이에요. 모두가 그런 단계나 그런 걸 겪지 않나요, 안그래요?"
<호밀밭의 파수꾼> - p. 28
Q. 과연 너무 늦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딸 아이의 고등학교 담임은 3년 동안 같은 선생님이었다.
딸아이는 그 흔한(?) 진학 상담 한 번 하지 않았다.
아, 내신 관리를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가족에게 이야기 한 날,
그날 밤 늦은 시간 전화를 한 것 외에는 따로 상담을 한 적도 없다.
물론 1학년 때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학부모 상담을 꼭 신청을 했고, 이야길 나눴다.
어쩌면 나도 그날 상담 후 더이사 이 선생님이랑 상담을 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학생들은 이미 안다. 이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신중한 딸은 어쩌면 담임 선생님의 성향을 나보다 더 빠르게 파악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3이 될 때까지 그 선택을 하면서도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안 드려 밤에 전화가 오도록 만들었겠지.
"어머니 전교에서 방과 후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 전교에서 2명입니다."
"어머니 전교에서 방과 후 공부를 하지 않고, 바로 하교 하는 아이는 00 밖에 없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도...."
내가 딸의 1학년 담임으로, 2학년 담임으로 들은 유일한 말들이다.
딸 아이의 선택이나 공부 방식, 행동들은 한 줄 세우기를 하는 담임에게는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고,
그 선택을 존중해주는 우리는 방관하는 답답한 부모였을 것이다.
반면 중학교 때 선수 생활도 하지 않았던 아들이
일반 고등학교에서 축구를 한다고 영국 행을 선택했을 때 담임선생님의 응원과 지지는
아들이 아직도 한국에 들어오면 담임 선생님을 뵈러 가게 하고,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의 횡보가 일반 아이들과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한심한 취급을 받아야 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홀든의 선생님인 제퍼슨이 보면
"부모님, 부모님의 머리에 분별력을 넣어 드리고 싶군요. 걱정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라고
이야기 했을 지도 모르겠다.
너무 늦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그 기준에서 보면 우리집 아이들은 모두가 낙제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