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나 사이

<필사 문장을 통해 나 들여다보기> 5.

by eend

녀석이 그렇게 괜찮아 보이려고 단장을 하는 이유는 환장하도록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p.47)
나에게 필요한 건 관객뿐이다. 나는 관심병 환자니까.(p.48)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Q. 자신을 환장하도록 사랑하는 것과 관심병 환자 사이...과연 나는 자신을 사랑할까?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J의 책을 몇 번씩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이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친구 00에게 물었더니 곁에 두고 힘들어질 때마다 다시 읽게 되는 책이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바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좋았는데, 교하연 선생님들과 톺아보기를 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다시 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00야, 책은 어땠어?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음~~나를 만나게 해줬지. 나 조차도 미심쩍었던 나를..."

"우와, 최곤데...."

그랬다. 나는 왜 하브루타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고, 제대로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매번 말을 하곤 한다.

학생들에게도 항상 선생님의 1년 목표는 너희들이 자신의 리모컨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아닌....그것을 위해서는 '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고...


나는 이것을 어릴 때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타인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았고,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사랑으로 돌아오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나의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허해지는 마음에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왜 그런지 몰랐었다. 나는 타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버린 타인을 의식하고 주변을 의식하는 습관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반백년 을 살고 있는 이제서야 겨우, 아주 조금은 그 방법도 알겠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도 알게 되어서 조금씩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사랑하기 위한 습관 들이기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나와 마주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하브루타와 독서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를 마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주변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 그렇게 주변을 보고 신경을 쓰던 때와는 다르게 제대로 상대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진짜 나를 만나다보니 주변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이었다. 심하게 마흔 앓이를 했던 이유도 제대로 나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간극을 인정하는 것이 마흔앓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나를 만나는 아이들은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매번 같은 이야길 하고 있다. 내가 마흔에 경험한 것들을 좀 더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다시 출국하는 아들에게 편지와 함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가방에 함께 넣어줬다. 내가 머물렀던 필사 문장들의 띠지가 붙은 채로...

20대가 된 아들에게 삶은 어떤 말을 걸어줄 지...그것을 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했다. 나에게도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던 어른들이 있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빨리 나를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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