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문장으로 나 들여다보기> 8.
나는 박물관이 매일매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책을 보듯이 다 알고 있었다. 피비는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는 늘 그 박물관에 갔다. 우리한테는 그 선생님, 미스 에이 글틴저가 있었는데, 젠장 거의 토요일마다 우리를 데리고 거기에 갔다. 가끔은 동물을 보았고 가끔은 인디언이 옛날에 만든 물건을 보았다. 도기나 짚 바구니나 그런 모든 것, 그 생각을 하면 아주 행복해 진다. 지금도. 그 모든 인디언 물건울 본 뒤에 보통 그 커다란 강당으로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난다.
콜럼버스. 거기서는 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는 걸 보여주었다. 우리의 페르디난도와 이사벨라에게 배를 살 돈을 빌려달라고 설득하느라 겁나게 고생을 하고, 선원들이 그에게 맞서 폭동을 일으키고 그러는 영화. 아무도 우리의 콜럼버스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늘 캔디나 껌이나 그런 걸 많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 강당 안에서는 아주 좋은 냄새가 났고,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편하고 건조하고 아늑한 곳에 있었다. 나는 그 빌어먹을 박물관을 사랑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 중 p.184
어떤 것들은 있는 그대로 늘 있어야 한다. 그 커다란 유리 상자에 갖다 두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건 너무 안 좋다. 어땠든 걸으면서 나는 계속 그 모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 중, p187
Q. 나는 언제 나의 홀든을 만났을까?
박물관을 사랑한 아이, 책도 많이 읽고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섬세한 아이.
피비를 찾아가는 짧은 여정은,
홀든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시간이다.
홀든은 이렇게 맑고 건강한 아이였는데,
박물관의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아이였는데,
지금 왜 이런 모습으로 변했을까?
학교와 사회가 망쳐놓은 아이.
아니, 점수와 줄 세우기, 똑같은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것이 그 아이의 모든 잣대가 되어버리는 현실,
그 현실이 망쳐놓은 아이, 홀든.
우리도 지금 똑같은 홀든을 여기저기에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홀든은 그 정해진 잣대에 맞지 않아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그것은 홀든에게 무한한 가능성, 자유를 주는 것,
그래서 어쩌면 현실이 망쳐놓을 뻔 한 아이를
제대로 된 홀든의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홀든은 알고 있을까?
그것을 알게된 홀든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궁금해진다.
나는 언제 나의 홀든시절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아니 언제 그것이 제대로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알아차린 게 맞긴 맞을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걸 보면 알아차린 건 맞는 것 같다.
다만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있는 순간이기는 한 듯 하다. 여전히...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그것쯤은 안다.
예전에는 그 답이 내가 아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나는 늘 '답정너'였다는 것, 그것을 이제는 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으나 그 물음에 대한 나만의 답을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것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이제는....그래서 편안하다.
지금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