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도 괜찮다고 말해주잖아
오래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일본 여행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에 방문했던 사진을 발견했다. 도쿄 키치조지의 커다란 숲 한켠,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선 듯한 지브리 스튜디오. 그 안에서 만났던 애니메이션 속 풍경들은, 그곳에 방문한 어린이들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황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지브리 스튜디오를 사랑할까? 아름다운 그림체, 동화적인 스토리, 상상력, 혹은 메시지. 사람마다 지브리 스튜디오를, 그리고 그 창작자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생각하면 가장 크게 생각나는 단 하나의 주제가 있다. 바로. 모험.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비슷한 상황들을 반복하게 된다. 늘 같은 환경에서,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 늘 비슷한 일을 하며, 늘 비슷한 교훈과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것이야말로 정말로 안정적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한 번쯤, 원치 않아도 낯선 세계에 떨어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살던 안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비극 같기도 해서,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니 그게 어쩌면 정상인 것도 같다. 낯선 세계가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기억하려고 한다.
시골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가 토토로를 만나게 되는 순간. 그건 두려움이라기보다 신비함이었어.
숯검댕이 먼지 요정들도 메이에겐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요정이었어. 비를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빌려주었을 때 토토로가 건넨 나무 씨앗. 그건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기쁨과 성장의 씨앗이었어.
고약한 마녀의 저주로 인해 소피는 순식간에 할머니가 되고야 말았지만, 결국 하울을 만날 수 있었잖아. 자유로운 유성이 된 캘시퍼도,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잖아.
새로운 세계가 너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새로운 모험을 떠난 것이라고. 여기서 무엇을 만날지 모른다고. 그건, 무서운 폭풍우와 비바람이기도 하겠지만, 전혀 다른 행복일 수도 있다고.
아무리 낯선 세계에 떨어져도. 거기서 하울을 만날 수 있다면. 캘시퍼를 만날 수 있다면. 토토로를 만날 수 있다면. 좀 괜찮을 것 같아.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 늘 나쁜 것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거든. 오히려 그 모험들은 우리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예전엔 못했던 경험을 안겨다 주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주니까.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넓어지니까.
그렇게 지브리를 사랑하는 한, 나는 모험을 하게 되어도 좀 괜찮을 것 같아. 살면서 만난 애니메이션들이 준 용기가, 나를 호기심 어린 멋진 탐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거거든. 그래서, 나는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서,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지켜준 애니메이션들을 보면서, 나도 저땐 저랬지 하고 회상하려고 해. 그게 불확실하나 인생을 즐기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