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4월 1일이다
내년 4월 1일에도
나는 또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만우절이네.
장국영이 떠난 날이네.
2003년 4월 1일. 그는 떠났다. 그러니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 해,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는데, 아마도 수업을 듣다 공강 시간에 친구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더 장국영을 좋아하던 내 친구는 중앙도서관 앞 계단에 앉아 펑펑 울었다. 그만 달래고 집에 가려 셔틀버스를 탔는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도 또 펑펑 울었다. 사실은 나도 울고 싶었다. 그러니까 장국영은 내게 어떤 사람이었냐면 말이야.
그 시절 장국영은 나에게, 국경 밖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80년대 90년대 홍콩영화를 사랑하며 청소년기를 보내온 사람들은 아마 많이들 그랬을 것이다.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지만 어쨌든 그게 사랑이 아닐 리 없었다.
스타를 사랑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사실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그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지만 나는 그를 뼛속 깊이 사랑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받고 눈물 흘린다는 것. 좀 불공평한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세상은 뭐야. 기브 앤 테이크잖아. 나만 응원하고, 나만 사랑하고, 나만 추앙한다는 건 좀 반칙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장국영을 사랑한다는 건 그러니까, 좀 마음이 많이 쓰인다는 말이었다. 너무 잘생겨서 그렇다고 하면 또 맞는 것도 같지만, 장국영에게는 뭐랄까 좀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은 구석이 있었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리 유약한 사람도, 그리 흔들리는 사람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영화 속의 배역들 때문일까, 섬세하게 펜선으로 그려놓은 듯한 이목구비 때문일까, 나는 장국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마음이 쓰이면 끝난 거지 뭐. 귀여우면 끝인 것처럼. 장국영은 나에게 그러니까 스타 이상의 마음 쓰이는 어떤 존재였던 것이다. 애잔함. 그것이 그가 나에게 주는 핵심정서였다. 그런 그가.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니. 그렇게 떠난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잘 견디며 또 그가 없는 세상을 잘 살아갔다. 종종, 그의 영화를 보며, 어딘가에서 그가 잘 쉬고 있기를 바라며.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 아비정전 중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직장인이 되었는데, 여름휴가차 홍콩을 방문하게 되었다. 쇼핑 같은 것은 별로 취미가 없었고, 내가 사랑하던 홍콩 영화 속 장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담고 싶어서였다. 홍콩을 가는 영화팬들이 좋아하는 코스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중경삼림처럼 사진도 찍고, 골드핀치 레스토랑에서 영화 화양연화 속 세트메뉴를 시켜 먹었다. 란콰이퐁과 소호 거리도 느낌 있게 걸어보고, 양조위가 좋아한다던 딤섬집도 갔으며, 장국영이 생전 즐겨 찾았다던 홍콩 근교의 리펄스베이 비치도 어렵게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사실 거기엔 장국영의 향수 같은 건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나는 슬램덩크가 좋아서 북산고등학교-가마쿠라 고등학교에도 찾아간 형태의 사람이니까)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에 다다랐을 때는 그래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무언가 조금 무거웠다. 내가 찾아간 계절은 4월 1일은 아닌 더운 여름이어서, 추모의 열기 같은 것은 조금도 없이 화려한 야경과 쇼핑객들의 웃음소리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나는 무거웠다. 차마 호텔에 묵을 돈은 없어서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이 보이는 벤치 같은 것에 앉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자 지나가던 한 홍콩사람이 곁에 앉았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너도 장국영을 만나러 왔니?"
자기네 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죽은 연예인을 기억하기 위해 그 공간에 왔다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한심하다고 생각할까? 그런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나는 대답했다. "네. 저는 장국영과 그가 남긴 영화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요." 그러자 그는, 나의 걱정 따위 비웃기라도 하듯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장국영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비록 짧은 영어 탓에 반은 알아듣지 못한 채로 지나갔지만, 적어도 그의 장국영에 대한 애정이 내가 가진 것보다 10배, 아니 20배 그 이상은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장국영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을 거의 10분 가까이 쏟아낸 그는, 일정이 있다며 힘차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국경 밖 가장 사랑한 장국영.
그리고 국경 밖에서 만난
나보다 더 장국영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
그것은 약간 인류애 같은 것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해. 네가 그리워하는 것을 나도 그리워해. 네가 슬퍼하는 것을 나도 슬퍼해. 우리는 다르지만 어떤 감정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그때의 그 사건은 살아가면서 내가 종종 힘들고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가끔씩 떠오르며 이름 모를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같은 것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어.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않아도 돼.
장국영의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같은 책을 사랑한 독자들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페이지와 인상 깊은 문장은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책을 읽었고, 가슴에 품었으며, 영영 잊지 못하게 되었다. 그 책의 페이지는 끝났고, 더 이상 새로운 페이지는 발행되지 않지만, 언제든 다시 그 책을 꺼내 첫 장부터 읽으면 될 일이다. 시간을 초월해, 공간을 초월해, 우리는 언제든 그렇게 장국영을 다시 읽고 사랑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거의 확신 같은 것이다.
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은밀한 사랑을 당신도 사랑한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는 약간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다른 지역, 다른 나이, 다른 성별로 살아가는 당신을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없겠지만, 당신이 장국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 비약이 심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내가 별 것 아닌 이유로 장국영을 사랑했듯이, 우리도 별 것 아닌 이유로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해마다 장국영을 검색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인류애를 발견한다.
내년 4월 1일에도
나는 또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만우절이네.
장국영이 떠난 날이네.
하지만 그는 한 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