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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Apr 08. 2024

떠날 판다를 사랑한다는 것은

판다가 알려준 순수한 행복과 애정



나는 동물원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도 분명 그랬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다 이 뚠빵한 판다 녀석 때문이다



보도사진에서 나오는 낙후된 시설의 동물원에서 사람에게 괴롭힘 당하는 동물들의 이미지. 갇혀 있는 답답함과 자유를 박탈당한 야생의 동물들. 그게 내가 동물원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였고, 그래서 동물원에 간다는 사람들에 대하여,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 사실이다. 놀이공원까진 괜찮아도 동물원은 좀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반평생을 살아왔던 것 같은데…


나의 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생각은, 모든 것은 푸바오라는 판다를 만나고 꼬여버렸다. 심각하게 귀여운 눈망울에 뚠빵한 실루엣,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판다에 나는 빠져버린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나의 타임라인은 푸바오의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되었고, 좋아요를 누르는 족족 알고리즘의 은총으로 새 로운 뚠빵가족들의 이야기가 업데이트되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38세 나이에 푸바오 인형과 굿즈를 사 모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국을 뒤흔든 푸바오의 골 때리는 귀여움 때문인지, 혹은 사육바오 님들의 케미와 헌신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바오의 눈물 나는 모성 때문인지, 러바오의 대책 없이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루이후이바오 동생들의 귀여움 바통터치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판다들의 하루하루를 지켜봤고, 강바오 송바오 오바오 님들을 내내 질투했으며, 푸가 떠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 이별이다. 나는 지금 이별이라는 이슈에 취약하다. 이렇게 사랑한 판다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분명 작년부터 알고 있던 일임에도 너무 가슴이 아팠다. 동물 하나 떠나는데 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물을 사랑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특히나 푸바오는 나의 심심한 병원 생활 내내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주던 귀여움이자 삶의 원동력이라서, 그 타격감은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애써 덤덤해할, 그러다 결국 눈물 흘릴 사육바오 님들의 마음이 더 걱정되었다.


귀여움 만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판다를 사랑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사람과 판다 사이에 느껴지는 애착관계였던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서로를 애정할 수 있을까? 종을 넘어서 어떻게 이리도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강바오 님의 속 깊은 사랑과 세심함이, 송바오 님의 킹받는 막내삼촌 같은 장난스러움이, 오바오님의 무심한 듯한 다정함이, 그런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긴 유튜브 채널을 보는 것이 내가 가장 힘든 시절을 견뎌내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 세상에는 아직 저렇게 아름다운 감정들이 있어. 아주 작은 것으로도 저렇게 마음을 나누고 애정을 갖고 순수하게 행복할 수 있어. 몇 주간 병실에 누워있던 나에게 판다월드는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수술을 앞두고 가장 힘든 시절 송바오 님의 8월의 댓잎 명언 사건은 나의 눈물 버튼이 되어 주었다.



“푸바오, 기억해. 먼 훗날 암컷 판다로 살아가다가 너무 힘든 일을 겪고 지쳐서 손가락 하나조차도 움직일 힘이 없을 때, 누군가 8월의 댓잎 새순을 하나하나 모아서 너의 입에 넣어준다는 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야. 너를 아주 많이 응원한다는 거야. 너의 엄마는 그렇게 힘을 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았단다. 지치고 힘들 땐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렴.”


- 송영관 사육사



그때 나는 무척이나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가족이, 친구가, 동료들이 물론 필요한 힘이 되어 주었지만 어쩔 수 없는 속상함과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푸바오 사육사 송바오 님의 바로 저 말이었다. 그래 나에게도 8월의 댓잎 새순을 모아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지만,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바오의 루이후이 출산과정을 보며, 그 순간을 지켜주는 사육바오 님들을 보며, 나도 무언가로부터 보호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분명 귀여움과 즐거움 그 이상의 감정이었고 작년 여름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나에게 정말 큰 의미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떠날 판다를, 사랑한다는 것은, 여전히 슬프고 또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사랑한 판다는 더 넓은 환경에서 새로운 인생의 순간을 맞이하겠지만, 우리가 그토록 깊게 사랑한 날들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푸바오가 떠난 트럭을 토닥이며 눈물짓던 송바오님은 루이후이를 부둥켜안고 다시 즐거운 일상으로 회복 중이다. 그 마음의 빈자리가 어떨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괜찮길, 너무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모두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지금의 상처를 덮어 나갈 테니까.


언젠가 또 판다와 헤어지는 날이 온다면 무척이나 슬플 것 같지만, 순간순간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또 아기 뚠빵자매들과 우리 이뻐이뻐 아이바오, 해맑은 러바오와 사육바오 님들의 신규 짤들을 지켜보며 나는 또 순수하게 행복할 것이다. 그게 그 판다가족들이 매일을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하루하루 충실히, 맛있는 댓잎과 당근 그리고 사과를 먹으며, 뒹굴대며 햇살을 즐기고 서로 건드리고 장난치고, 그렇게 순수하게 별거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진정한 행복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판다가족과 사육바오 님들이 내게 알려준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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