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재가 눈처럼 내리던 날이었다. LA에서 산타 바바라로 산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US-101번 고속도로 옆 경사면이 지옥처럼 불타고 있던,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20여 분을 걸어 산타 바바라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는 마스크 없이 걸었다.
올 9월 미 동부엔 비가 무척이나 왔다. 시월 요즘엔 아침이면 한기가 물안개처럼 깔린다. 한기의 강에 낮게 드러누워, 캘리포니아 산불 뉴스를 동부 해안가에서 듣는다. 유명한 공과대학에서 생물, 그리고 화학을 3년 만에 복수전공하고 졸업한, 자칭 "샤먼"이 방화를 했단 소문을. 이래저래 알아보니 학창시절엔 멀쩡했다고 한다. 뉴스에선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비가 또 무척이나 오리라 한다.
떠나온 캘리포니아는, 특히 남부에는, 비가 온다면 겨울이었다. 우산이 없어 비가 오면 수업을 빼먹을 정도로 연중 비가 드물었지만, 어느 겨울 비가 많이 오면 우리는 이듬해 여름 산불을 걱정했다. 비가 오고, 나무가 자라고, 비가 많이 오고, 나무가 많이 자라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비가 오지 않고, 나무들이 바짝바짝 마르고,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비벼지고, 많이 자란 나무들이 많이 비벼지고, 큰 산불이 났다. 초봄 LA 근교 야산에 푸른 잎들이 무성하면 우리는 말했다 - "올해는 산불이 크겠는걸."
10여 년 캘리포니아 사는 동안, 산불은 매년 커졌고 가뭄도 매년 심해졌다. 기후는 변하지, 먼 산의 눈은 쉽게 녹아버리지, 사람과 돈은 수 년간 빨아들였지, 그들 먹을 농업도 점점 커지지, 이래저래 수자원은 매년 부족해지기만 했다. 떠나오기 전전 여름엔 시청에서 "Navy Shower"라고 해서, 비누칠 하는 동안 샤워기 틀어놓지 말고 5분 안으로 샤워를 마쳐달란 공문까지 내려왔었다. 회색 보도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잔디와, 잔디에 물 주는 스프링클러들과, 그걸 심은 사람들까지 모두 바짝바짝 마르던 그 해 여름.
그 해 겨울, 비가 왕창 오고 가뭄이 해결되고, 고장난 스프링클러들이 밤새 물을 넘치도록 흘려보내고, 이듬해 여름 산불이 크게 났다. 물이든 불이든 적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힘들었다. 물이 없는 사람들, 집이 불타는 사람들. 그리고 눈 내리는 재를 피해 떠나야 했을, 치워놓은 눈 같았던 집 없는 사람들. "샤먼"은 인간을 위해 자연을 설득하려다 불을 질러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어제는 뉴욕 블루노트에 공연을 보러 갔었다. 관객들은 마스크를 안 썼고, 일하는 사람들과 나는 쓰고 있었다. 음표와 리듬이 산불처럼 번지면, 은식기 부딪히는 소리는 빗소리 같았다. 돌아오는 NJ Transit 기차 안, 몇 달라만 도와달라던 사람이 "God bless you all"을 외치며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청소년들이 "Preach!"를 외쳤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던데... 비가 오기 전, 가을 바람 타고 온 눈이, 그런 마음에 먼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