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늘 준비가 덜 됐을 때 오고, 그건 내 잘못이다. 요즘 미국은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고 한다. 보통 자리가 이 시기엔 나질 않는 포지션에서, 자리가 다수 비었는데 지원할 의향이 있냐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사실 준비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고 이것저것 한 것이 패착이었다. 본래는 다른 쪽에 우선순위를 두고 투트랙으로 준비하고 있던 것이, 최근 그 쪽 업계 전반적인 상황은 이보다 좋을 수가 없지만, 일부 특수한 배경을 가진 연구직들은 반대로 상황이 안 좋아지는 걸 보면서 장기적인 비젼에 쉬이 비관적이게 되었다.
이후 우선순위를 바꾸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톱티어 쪽은 준비를 더 해야 하지만 중간티어 정도는 그냥 적당히 마무리해서 가도 무리 없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자리가 났을 때 타이밍을 우선해서 가야 하는지 어떤지 고민이 많다. 사실 고민이 많은 것은 아니고, 답은 이미 내 안에서 내려져 있다. 아직 본격적인 취업 시즌까지 시간은 있고 톱티어들을 준비하는 게 중간티어를 준비하는 데 아무런 손해가 되질 않는다. 그저 자리가 벌써부터 나고 있다니 좀 더 서둘러, 부지런히 준비를 마치면 될 뿐.
그러면서 혹시 단기적으로 미국 사람들이 취업을 하지 않는단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실업률은 계속해서 예상보다 좋게 나오는데 (수치상 예상보다 낮게 나옴) 비농업 고용지수는 계속해서 예상보다 덜 나온다. 물론 후자의 경우 예상치가 실물경제의 강한 반등을 기대해서인지 높게 잡혀있긴 하고 개선은 계속해서 되는 중이다. 보통 전자는 장기적인 노동시장의 트렌드를 나타내고, 후자는 단기적인 노동의욕을 반영한다고 한다. 즉, 준비가 된 사람들은 자리가 났을 때 째깍째깍 치고 들어가고 있지만 이참에 아예 필드를 바꾸는 이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아닐까. 예컨대 데이터 과학자라던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던가, 최근 내 주변에서는 다른 분야에 몸 담고 있다가도 이런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왜인가 하면 대체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시기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일반 기업들보단 저 쪽이 업무 여건이 유연하고 육아 관련 복지가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가 한창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니 사이클에 올라타는 셈이기도 하고.
그럼 준비가 덜 된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별 수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를 충실히 할 뿐. 그 동안의 큰 실수들은 대체로 내 능력보다 잘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내 실력도 크게 늘긴 했지만, 사람이 그런 식으로 극한까지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며 2~30년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세간에 간혹 있긴 하지만, 내 경험상 그건 결국 밖에서 보기에 그리 보일 뿐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과제를 충실히 하기를 2~30년을 거듭하면 남들에게는 그 오랜 노력이 상상이 되질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었냐 물어보면 "그냥 했다"는 무덤덤한 대답을 가장 많이 듣게 된다.
차근차근 살겠다고 결심한지 벌써 수 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허둥지둥 살며 두서 없이 아무것도 준비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슬픈 일들이 이후에 내 자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매 순간이 내게 쓸모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매일 희로애락을 과다복용하며 살았다. 하지만 삶도 결국 죽음을 차근차근, "그냥" 준비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멀리 보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면, 들뜬 마음이나 감정이 뒤섞인 반성은 접어두고서 다시 하던 준비를 "그냥"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아무 일도 아니다. 누가 뭐라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