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왔다는 친구는 도시가 아니면 자기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집은 비교적 "외곽"에 있어, 식당가까지는 2분을 걸어가야 한다고.
자기 친구는 "중심가"에 살아서, 식당가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그에게 우리가 만난 곳은 조용하고, 공허하고, 지루한 곳이었다.
이제 그는 포항으로 간다.
나는 신도시에서 16년, 기숙학교에서 3년, 그리고 근교에서 10년을 살았다.
언제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아쉽지만 내가 바라 마지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가 만난 곳은 조용하고, 공허하고,
내게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게 짝지어진 것들은 나를 업고 간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근교에서 근교로, 그리고 아마도 다음 근교로
조가비 같은 삶이다. 나는 뒤집어 쓰고 살며
그리하여 파도 소리가 이제 들리는 공동을 부둣가 공구리에 파도 결따라 통통 두드리는
하나의 껍데기로, 혹은 접선으로, 그러나 나의 그 어떤 중심으로
돌이킴 없이 떠내려 가는 참이다.
나: 많은 것이 우연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토록 거대한 자유가 우연히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나: 이렇게나 자명한데, 어째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인지?
나: 자명한 것들이 보통 그렇지.
나: 순수한 감정 또한 그러할까?
나: 그래서 문학 외의 예술이 있는 것이지.
나: 갓난아기의 울음이 오롯이 담긴 시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긴 하지.
나: 하지만 심상을 유도할 수는 있지 않은가?
나: 그건 네 것이 아니니까.
나: 마침 내 날개도 꽤 작은 편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