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부재

by 김간목

12월로 들어선지도 며칠이나 되었다. 밤이면 비가 온다. 나는 몰랐다. 겨울비 오는 소리는 가을밤 풀벌레 우는 소리를 조금 닮았다. 소리를 소리로 지워 더욱 조용해지는 그런 밤들이 있다.


얼마 전엔 올 겨울이 유난히 추울 거란 뉴스를 봤다. 요즘엔 반대로 올 겨울이 유난히 따뜻하다고들 말한다. 찬 공기는 지금 캐나다에 갇혀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갇혀 있는 것들은 언젠가 풀려나야 하고, 그러면 지금 내리는 비는 삽시간에 눈으로 뒤바뀌어 펑펑 내릴 테고, 근미래의 어느 밤은 내리는 눈이 소리를 먹어버려 더욱 조용하게 이어질 것이다.


나는 침묵에도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아침엔가, 어느 해의 첫눈이 올 만했던 무렵에, 나는 이불 속에서 사방이 너무나 고요해 소스라치게 놀라 깬 적이 있었다. 밖에는 눈이 소복하니 쌓였고, 차들도 아직 다니지 않고 있던 겨울 아침. 비록 눈은 그친 뒤였지만, 나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다른 말론 소리가 지워지는 소리를, 들어서 알게 되었다.


뉴저지 이사 온 지 2년이나 지나서야 얼마 전에 눈삽을 샀다. 작년에 차 위에 눈이 30cm 넘게 쌓였던 어느 날, 그거 치우는 게 영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엔 차 없이 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차가 있는 채로 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샀다. 겨울이 추울지 따수울지도 모르는데, 내가 세상일을 뭘 알겠는가. 다만, 만약에 차가 있는 채로 살게 된다면, 조용한 밤들이 더욱 이어질 것임을 나는 안다.


글을 쓰는 중에 비가 그친 듯, 세상의 소리가 돌아온다. 그러나 글을 마치기도 전에 빗소리가 돌아온다. 마치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듯, 자기에 대해 써달라는 듯, 나중에 차 없는 곳에 가서도 우리 함께 조용했던 밤들은 잊지 말아 달라는 듯, 그처럼 차디 찬 겨울비는 무슨 말이라도 세상에 남기려는 듯, 혹은 침묵에도 목소리가 있다고 내게 일러두려는 듯, 제가 눈이 되어버리기 전에, 오다가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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