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du

by 김간목

음악은 때로 놀라운 일을 한다. 그것은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들어도 좋고, 새로운 경우이다. 많이들 있는 경우라 하겠다. 또 많이들 있는 경우라 하면,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들었을 때, 세계선을 넘어 이전 세월의 내가 생생하게 돌아오는 경우라 하겠다. 그러면, 돌아온 내가 나 스스로에게 생경한 경우는 흔한가? 오늘의 Jordu는 그렇다.


Jordu, 1953년 Duke Jordan의 곡이다. 명반, "Flight to Denmark"의 끝을 그린 듯이 장식하는 이 곡에 묻어나는 아쉬움과 즐거움은 놀이동산을 다 놀고 서는 기분을 닮았고, "Flight to Denmark"라는, 사연을 알면 슬프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한 제목을 감안하면, 한겨울에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로 공항에 들어서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의 귀환은 성대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곡은 앨범에서 이질적이다. 나는 그 앨범을 통째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곡을 그 앨범에서 가장 좋아했다. 앨범을 들으며 피아니스트를 따라 덴마크 깊숙히로 들어갔을 청자를 한 손으로 끌어올리는 이 곡은, 어떤 기분으로 후자가 피아니스트를 따라 덴마크로 들어섰든, 나서며 청량한 감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나는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 어떤 기분으로든 나는 이 앨범을 들었고, 대체로 그런 청량함이 고마웠다.


기억들이 엮여 돌아온다. 지금쯤 어딘가의 교수로 일하고 있단 선배 중 하나는, 유럽 어딘가의 깡촌에서 우리가 인턴을 하던 여름에 주말이면 차를 몰고 근처의 공항으로 가곤 했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이 근처에 주말에 커피와 식당, 와이파이가 있는 곳은 거기가 유일하거든." 그에게 공항은 떠나거나 돌아오기 위해서만 찾는 곳이 아니었다.


쓰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음이 지어지는 기억이다. 공항이라면 지긋지긋 끔찍하던 때엔 이런 기억이 돌아오지 않다가, 공항과는 딱히 연이 없어진 이제에 돌아오는 것이 우습다. 나는 여전히 일 없이는 공항을 찾지 않는 탓이며, 또한 요즘은 공항을 갈 일이 달리 없는 탓이다. 그것은 새롭다.


그 때는 여름, 오늘은 겨울. 서서히 겨울에 축축하니 젖어드는 동부의 연말을 일 없이 혼자 맞으며, 결과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따라서 음악 외적인 이유로 오랜만에 이 앨범을 꺼내어 듣는 참이다. 그러면 그 여름의 내가 돌아온다. 스스로의 공항이 여름과 겨울, 그리고 도처에서 게이트를 열고,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라 자문한다. 그리고 그 의문은 이 앨범을 들은 모든 여름과 겨울 중, 오늘 외엔 일어난 적 없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 또한 새롭다.


따라서 이것은 내게 새로운 Jordu이다. 몇해 전, 정작 덴마크로 비행기를 타고 가던 길엔 준비된 마음으로 같은 앨범을 들을 따름이었는데, 이제 피아니스트의 그 기분을 알 수 없게 되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앎이란 내게 생경하고, 그 초연함이란 어쩌면 많이들 있는 경우인지를 글을 다 쓰고 난 지금에 와서도 궁금해하는 참이다. 이 같은 결여가 지속되는 한, 나는 Jordu가 여기서 10년이 더 지난 뒤에도 어디 누구의 공항에서든 내게 새로워질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음악을 놀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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