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메시니 아저씨가 현재 미국 동부를 따라 투어 중이시다. 설명은 필요 없겠지.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투어를 도는 동선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메트로폴리스를 비껴가는 감이 있다. 얼마 전에 뉴욕 근처엔 안 오나 찾아봤더니, 코네티컷, 뉴 브런스윅, 팟초그, 로체스터와 트로이를 랜덤한 순서로 훑곤 캐나다로 넘어가는 걸 발견했다. 내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중남부를 돌고는 유럽으로 떠나기 때문에, 리오프닝 후 맨하탄 공연을 기대하셨을 분들은 벙찔 만한 일정이다. 이 아저씨 나이 먹고 음악도 꽤나 deep해지는데, 이젠 공연 일정조차 무슨 의돈지 알 수가 없게 됐다.
공연 내용은 최근에 발매한 Side-Eye 앨범이다. 19년도 라이브를 녹음한 앨범은 프로젝트 성이 강한데, 예컨대 이 인터뷰에서 팻 메시니는 이번 앨범의 컨셉에 대해: "뉴욕에 최근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아져서 그들과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 젊은 아티스트들은 팻 메시니의 음악도 들으면서 자랐고, 그래서 팻 메시니가 어떤 식으로 연주하는지 알고 있다고. 그렇게 수두룩한 뉴욕의 신진 아티스트들을 이 프로젝트에 모아놓고, 그들과 자신이 공유하는 자신의 스탠더드 곡들을 연주하기로 하면서, 팻 메시니는 아울러 그들과 "지금"의 자기가 어떤 음악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앨범을 뜯어보면 익숙한 곡목들이 보인다. "Better days ahead" (1989), "Timeline" (1999), "Bright Size Life" (1976), "Sirabhorn" (1976), "Turnaround" (오넷 콜먼, 1959) 등등. 신곡들도 보이는데, "It starts to disappear", "Lodger", "Zenith blue"가 그렇다.
필자는 어제 공연을 다녀왔다. 조 다이슨이 드럼을 치고, 잭 프랜시스가 건반들(6개)을 치고, 무대 뒷편 거대한 오토마타가 퍼커션을 치고, 팻 메시니가 이것저것(...) 쳤다. 팻 메시니 같은 네임드는 나 같은 음알못이 아는 척하다간 큰일 나기 때문에, 그냥 잘 했다(...)고 총평을 하고, 재밌었던 것들만 나열해보려 한다.
요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은 확실히 소리가 깔끔하다. 누구 영향이라거나 다들 고등 교육을 받아서라기보단 그냥 그런 경향인 것 같다. 왜, 한국 가요도 박자 쪼개는 게 요즘이랑 옛날이 다르듯이 말이다. 오늘 드럼을 맡은 조 다이슨도 드럼이 너무 깔끔해서 팻 메시니와 첫곡을 둘이 연주할 때는 다소 어색한 감이 있었다. 건반(들을 통한 DJ잉 및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맡은 잭 프랜시스는 테크니컬한 부분에선 팻 메시니의 아바타인가 싶을 정도로 잘 어우러졌지만 감성적인 선곡에선 (짬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감정선이 약간 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연 내내 팻 메시니 아저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되새길 수 있었다.
공연 중 재밌었던 것 하나. 드럼-건반-팻 순으로 솔로가 이어지는 곡이 하나 있었는데, 앞에서 드럼이 깔끔한 정박으로 솔로를 따다다다닥 해치우고 건반이 클래식과 재즈를 오가며 88개 건반에 각종 키보드들, 그리고 열 손가락과 온몸(...)까지 하여간 쓸 수 있는 건 다 쓰면서 와라라라락 해치우자, 메시니 아저씨는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락과 블루스와 재즈를 마디마디 오가면서 미들-하이 피치에서 소리를 꽉꽉 채운 솔로를 선보이셨다. 아저씨... 젊은 애들 기죽게... 그거 좀 져 주셔도 됐을 텐데...
공연장 얘기를 하자면, 여기는 원래 연극 공연을 하는 극장이다. 따라서 개방된 공간에서 소리가 매우 잘 울려서 밝은 느낌으로 형성됐다. 학창시절 5천원짜리 싸구려 이어폰으로 팻 아저씨 음악을 듣던 때가 생각이 나서 즐거웠는데, 그걸 또 뚫고 나오는 메시니 아저씨 특유의 블루와 딥함이란... 내 나이 대에 본진이 건반이라면 많이들 메시니-멜다우로 메시니 아저씨를 첨 만났을 텐데, 그 때나 지금이나 내시는 소리 특유의 질감이 (조금씩 변해왔어도) 한결 같은 데가 있다. 양감은 좀 늘어난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은 연륜 감안해서 내가 과잉해석을 하는지도...
관객들이랑 공연장 분위기도 재밌었다. 일단 연령대가 높았는데 오히려 더 캐쥬얼했다. 여기는 혹시 클럽인가 싶을 정도로, 자기들 맘대로 흥이 오르면 아무 때나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선곡이 맘에 들거나 혹은 자기들 맘에 드는 프레이즈가 나오면 솔로 중이라도 감탄사를 연발하고, 그런데 그 왜 있잖은가, 감탄사조차도 무대와 코드가 맞고, 박수조차도 전원 정박에 메트로놈처럼 떨어지는, 그렇다 그들은 고인물이었다. 웃음과 흥과 심지어 소리를 한껏 낮춘 담소(...)들이 음악과 함께 해서 아무튼 눈물이 날 정도로 친근했던 그 곳에서 우리는 디너쇼 같기도, 소극장 같기도, 그러면서 록 페스티벌 공연장 같기도 한 그런 아주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약 2시간을 함께 흔들흔들했다. 진행요원들마저도 친근했다. 카네기 홀의 경우, 친절하지만서두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져서 마치 비번인 호텔리어들 같은 데 반해, 여기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 누나 형들이 공연날 밤에 갑자기 유니폼을 갖춰입고는 안내를 돕는 느낌이었다. "좋은 밤 되세요"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그런 곳.
메시니 아저씨는 모발이 참 풍성하단 생각을 공연 중에 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로 보면 더 풍성하다. 핸델이나 바흐 초상화에 나오는 그 정도로 풍성하다. 그래서, 특유의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이 기타 저 기타에 이 이펙트 저 이펙트 넣어서 이 악기 저 악기로 무시무시한 음표들을 쏟아내는 메시니 아저씨를 보면서, 바흐 당대의 사람이 바흐를 실제로 보면 이런 얼떨떨한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아저씨는 후대에도 그 음악이 연구되고, 또 연주가 되겠지. 언제고 먼 미래 내 아이들에게 "나는 메시가 뽈 차는 것도 생중계로 봤고, 메시니가 기타 치는 것도 코 앞에서 리듬 타며 봤단다" 라고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