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엔 92Y의 리오프닝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 올 시즌 모든 92Y 콘서트는 온라인으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한다. 직접 가는 것보다 온라인 표는 싸기 때문에 뉴저지 깊숙한 곳에 사는 필자 같은 사람에겐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기찻값에 저녁값까지 빼고 나면 금전적 지출만 거의 3배 차이 나고, 시간은 말할 것도 없으니.
일말의 불안감 정도는 있었는데, 다행히 스트리밍 퀄리티는 아주 좋았다. 우선 디렉터 아저씨가 나와서 92Y의 리오프닝을 알렸고, 소박한 규모의 홀에는 박수소리가 울렸다. 카네기 홀이나 MET 오페라 홀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아닌, 92Y 특유의 "친밀함"이 전해지는 박수 소리.
공연은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리차드 구드의 협연이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Bologne: "L'Amant Anonyme" 서곡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Mozart: 협주곡 25번, K. 503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 리차드 구드)
Mozart: 교향곡 36번, K. 425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92Y는 올해를 클래식 시즌이라 공언했으니, 오프닝 선곡으로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서곡을 기운차게 열고, 리차드 구드가 입장해 협주곡이 시작됐다.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엔 (다들 아시다시피) 전문 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협주곡 연주 중엔 리차드 구드가 눈빛, 팔꿈치, 노는 손 등으로 열심히 사인을 줬다. 예전 교양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모차르트의 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지휘봉을 든 지휘자는 없었다. 현대와 같은 지휘자는 베를리오즈 대에 가서 나타났지." 맞게 기억하는진 모르겠지만, 굴다 아저씨의 모차르트 협주곡 공연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리차드 구드의 연주에 대해 말하자면, 깨끗하고 맑고, 밝은, 그야말로 "영랑한" 소리. 그야말로, 이것이 18세기의, 클래식하고 클래식한 소리라는 듯한 소리였다. 허밍이 흠칫흠칫하게 했지만.
협주곡: 전체적으로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중시하는 "소통"과 92Y의 사상이 공명하는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 18개월의 암흑 같은 터널을 지난 후의 리오프닝, 그 첫 공연, 어느새 추위가 성큼 다가왔지만 나는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보며, 어쩐지 밖을 쳐다보면 새순이 싹을 틔우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촉촉하다고나 할까. 리차드 구드의 피아노 소리에 목관악기 소리가 "입혀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합이 좋았다. 모차르트 특유의 "멜랑콜리함"을 본인들 기량은 한껏 뽐내면서도 전달하는 연주자들의 역량이 놀라웠다.
심포니: 리차드 구드는 빠지고, 오르페우스 체임버는 호흡을 한껏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 몸처럼 오가는 셈여림, 의도된 오프튠, 음의 "양감" 등등. 관악기의 갈라지는 음색을 현악기의 오프튠으로 받는 게 감동적이었고, 관악기들과 대형 현악기들이 이루는 완벽한 베이스가 인상 깊었다. 특히 3, 4악장에선 "견실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음색이었고, 1, 2악장과의 대비가 기억에 남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스트리밍은 즉시 종료하지 않고 잠시 관객석을 비춰주는데, 92Y 특유의 공연 뒤 모습이었다. 카네기 홀이나 NY 필 공연에선 보통 연주자들이 퇴장하고 난 뒤엔 관객들이 밖으로 나가기 바쁘지만, 92Y의 경우엔 공연 직후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거나 서성거리며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옆자리 사람과 이런 저런 감상을 나누곤 한다. 음알못인 필자의 경우 현장에서 딱 봐도 내공이 엄청나 보이는 옆자리 관객이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시면 솔직히 깜냥이 탄로날까 봐서 무섭기도 했는데, 정작 공연을 스트리밍으로 보면서는 저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의 여운을 즐기지 못하는, 그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스트리밍을 해주는 게 어딘가. 그저 감사하고 있다. 한 번씩 찾아보시고, 한국에서도 혹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나 연주자들 공연이 92Y에 있는 경우엔 스트리밍을 해보시길. 게다가 공연 종료 시점에서 +3시간까지는 스트리밍 링크를 살려두니, 시간이 좀 안 맞더라도 스트리밍 공연은 보실 수 있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