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전 앞, 개인의 삶

by 김간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지 이틀이 지난 오늘, 뉴스에서 총 소리가 들린다. 나는 총 소리가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내 사부 되는 사람은 모스크바 출신 러시아 사람이다. 그리고 내 사제 중엔 러시아 중부 출신이 한 명 있었다. 우리들의 동료로는 우크라이나 출신이 둘 있었다. 한 명은 사부보다 연배가 위였고, 다른 한 명은 나의 사부와 사형제 관계였다. 이 사람을 XXX코라고 하자.


사부보다 연배가 위인 한 명을 빼고, 그리고 아무래도 일적으로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부를 빼고, 우리 셋 - 나와 사제, 그리고 XXX코 - 는 꽤나 친했다. 분명히 일적으로 만난 사이일 텐데, 서로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인간적으로도 같이 보낸 시간에 비해 꽤나 가까워졌다. XXX코는 파워 리프팅을 좋아한다. 그래서 체육관에서도 매일 마주쳤다. 한 번은 XXX코가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내게, 너 그거 정말로 좋아해서 마시는 거냐고 물어왔다. 대충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새벽까지 일터에 남아서, 번아웃이 온 채 로비에 늘어져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서로 묻고 대답하던 것도 우리 셋이었다. XXX코가 소싯적에 술과 대마에 잔뜩 취해 가까스로 운전해 집에 돌아갔던 얘기를 행복한 기억처럼 떠올리며 얘기한 것도 그런 새벽이었다.


사제는 2년 전엔가 사부보다 연배가 위인, 상술한 우크라이나 동료의 밑으로 옮겼다고 들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가 지금은 다소 현학적으로 간주되지만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프로젝트에 과단성 있게 뛰어들다니, 너무나 그 같은 결단이라 소식을 듣곤 미소가 지어졌다. 내 기억 속의 사제는 늘 퀭한 얼굴이다. 여전히 소년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약간 말을 더듬으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대서 사부를 흐뭇하게 만들던 그는, 나와는 달리 메드베데프 앞에서도 돈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강단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 둘은 잘 통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높은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늘 심각한 얼굴인 것, 그리고 앞서 말했듯 새벽을 떠돌기 일쑤인 것, 그런 사소한 점들이 닮았었다.


그리고 사부까지 합쳐, 우리 넷이 공유하는 기억이 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XXX쿠라고 써놓은 걸 발견한 XXX코는, 이러면 자기는 우크라이나 사람이 아닌 "루마니아 사람이 된다"며 웃었다. 타이밍 좋게, 저 "루마니아 사람이 된다"는 대목을, 우리 넷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즐거운 기억이다.


열흘 전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갈등, 그리고 전쟁을 바라보며 나는 슬퍼졌고, 그래서 조금 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크림 병합 이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늘 전쟁 중이었단 점이었다. 즉, 우리 넷이 어울려다니는 동안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들이 매일 서로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점심도 같이 먹는 동안에, 그리고 그들이 러시아어로 떠드는 것을 내가 흐뭇하게 지켜보며 다용도실에서 커피를 받는 동안에도, 그들 국가들은 서로를 물고 뜯고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았고, 서로 큰소리를 뻥뻥 쳐대는 바이든과 푸틴의 말이 서로 엇나가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밤을 새워 생각을 정리한 결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밖에 없으리란 것이었다. 그 때에는 많이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하던 때였고, 그래서 나는 당시에 슬픈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되며, 열흘 전의 내가 내린 결론이 그 사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그래서 지난 열흘 동안이 나를 더욱 슬픈 사람으로 만든다.


이틀 전, 연설 중인 독재자가 삐까뻔쩍한 방 안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농담 같은 소리만 해대는 것을 보며, 내 기억 속에선 나의 동료들이 손에 백묵을 묻혀가며 칠판 앞에서 러시아어로 농담을 나누는 정경이 오버랩되었다. 슬픈 소식 앞에서 그들 우그러지는 얼굴을 떠올리려 기억에 구김을 더해보려 들면, 이역만리 타향에서 뻣뻣하고 강인했던 그들 생활력이 도무지 접혀줄 생각들을 않는다. 우크라이나 동료들은 아직 고국에 가족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사부와 사제는 우크라이나 동료들 얼굴 보기가, 그리고 평소처럼 웃어보이기가 공연히 괴롭진 않을까. 아는 사람들의 친족들이 엮였을 수도 있는 전쟁이라 그런지, 저 끊기지 않는 총소리가 향하는 곳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나와 영혼이 닮은 모두들, 부디 잘 넘겨주길 바란다. 그대들 친족들과 친구들도 모두 무사하기만을 바란다. 뻣뻣하고 강인하게, 여느 때처럼, 나랏일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괴로운 마음은 매일의 새벽 속에 묻어버리길 바란다. 군은 투입하지 않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비난만 해대는 서방이 (그럴 수 밖에 없다곤 해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평화로운 산책 사진들이 공연히 미워지려고까지 하는 그런 속 좁은 밤, 슬픈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라니, 세상이 참 엿 같은 곳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덧붙이는 변명: 그 동안의 시 쓰기가 뜸했던 것은 이런 이유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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