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뉴욕 인근의 월세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지인들이 여럿, 허드슨 강을 건너 뉴저지로 이사를 간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니 질로우나 스트릿이지에 올라오는 리스팅들을 보면, 확실친 않지만 달에 2~300불씩, 못 해도 대략 10프로 정도는 올랐단 느낌이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맨하탄의 동쪽, 롱 아일랜드 시티에는 월 2200불 이하의 월셋집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도리어 맨하탄에는 몇 있었다. 물론 롱 아일랜드 시티보다 지하철 접근성이 열악하거나, 창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벽뷰(...)라거나, 건물 내에 세탁기가 없거나 하는 등 수준 이하의 집들이긴 했지만.
호기심이 동해서 오피스 건물들이 많은 미드타운과 상업지구가 많은 소호 인근을 기점으로 하고, 출퇴근 시간에 대해, 최소한의 주거요건은 만족하면서 월세가 2500불 이하인 뉴욕 인근 (맨하탄 각지, 저지시티, 호보켄, 롱 아일랜드 시티, 윌리암스버그, 브루클린 등) 주택들의 월세를 선형회귀로 fit해보았다. 최소한의 주거요건을 손으로 하나 하나 따져보느라 데이터 포인트가 결국 이십여 개 정도긴 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수식이 나왔다.
월세 ~ 2600 - 8*(1일 왕복 출퇴근 시간, 단위: 분)
단, 뉴저지의 경우 연봉 1억을 상정하고 맨하탄/퀸즈/브루클린 거주 시 내는 "City Tax" 3% 정도를 월세에서 뺀 뒤 계산했다.
흥미로웠던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맨하탄의 집들이 놀랍도록 오차가 적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전에 수준 미달의 집들을 죄다 쳐낸 덕에 샘플링에서 바이어스가 들어간 것이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헬스키친/어퍼웨스트사이드/킵스베이/로워이스트사이드 등, 넓게 퍼진 지역들의 월세가 모두 저 수식에 근접하게 나온다. 오히려 롱 아일랜드 시티의 경우 (아마도 신축이 많아서) outlier들이 많았으며, 따라서 뉴욕의 부동산시장은 참으로 효율적이며 대체로 알아서 값이 매겨져 있으니 괜한 잔대가리 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아무튼 이런 소소한 발견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뉴욕에 거주 중인 친구들 몇 명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꽤나 직관적이지 않은 얘기를 하나 들을 수 있었는데, 정작 뉴요커들은 출퇴근 시간에 신경 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뉴욕의 대중교통이 얼마나 열악한지 (한여름 열기가 빠지지 않는 맨하탄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20분 넘게 지연되는 열차를 기다리며 땀을 뻘뻘 흘려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는 내가 뜨악해져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고 되물었더니, 뉴요커들은 정작 자기들이 사는 동네의 분위기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예컨대 직장이 할렘에 있지만, 자기는 소호를 떠날 수 없어서 통근에 40분을 쓰며 월세를 더 내더라도 그냥 소호에 산다는 식이었다.
나의 발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라 재밌게 듣고 이런 저런 해석을 시도하다가, 내가 뉴욕을 잘 모르니 그냥 접기로 했다. 한편으론 어쩌면 부동산시장이 극도로 효율적이라 가격 설정을 시장에 아예 맡겨둘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저럴 수도 있는가 싶었다. 통근 40분에 월세도 더 내는데, 최소한 지불하는 추가요금이 합리적이어야 기꺼운 마음으로 지갑을 열 게 아닌가.
3.
그 외에 또 흥미로웠던 것이라면 뉴저지 집들은 씨티 택스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regression curve의 아랫쪽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몇 뉴요커들에게 물어봤더니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도 만나야 되는데뉴저지에 어떻게 사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도 재밌었다. 호보켄이나 위호켄 등 통근이 극도로 용이한 뉴저지의 몇몇 지역에서 맨하탄 미드타운까지를 구글맵으로 찍어보면 킵스베이나 96가 이북에 위치한 맨하탄의 동네들과는 정작 소요시간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했더니, 그들은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눈을 똥그랗게 떴다.
여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사실 대략 3가지 정도가 있을 수 있는데, 평범한 뉴요커들이 들고 있는 정보가 불완전해서 뉴저지의 월세가 낮게 책정된다는 것이 그 첫째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구글맵으로 찍어본 통근시간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뉴저지와 뉴욕 사이엔 접근성 이상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들은 설명들을 대충 취합해보면 마지막 경우는 확실히 유의미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뉴요커들은 대체로 직장에서 혹사를 당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로 하면 잠깐 짬을 내서 만나는 식인데, 실제로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뉴저지에 사는 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불러내기 힘든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하기사 하다못해 택시비가 더 나오기도 하니...
4.
아무튼 내가 그러모은 (몇 안 되는) 뉴요커들의 반응은, 나와 그들의 로직이 꽤나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선 수식과 같은 결과를 얻었을 때, 나의 합리적인 선택은 접근성이 매우 좋은 뉴저지 동네에서 살며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것이다. 씨티 택스를 제외하면 1400불 정도로 살 수 있는 집들이 있는데, 왜 뉴욕에서 그 2배를 내고 살지? 라는 것이 나의 의문.
그러나 내가 의견을 모은, 뉴욕 라이프스타일에 오래 적응한 몇몇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에게 뉴저지에서 1400불을 내고 사는 것은 비교대상조차 아닌 것이다. 내가 받은 첫인상으로는, 너무나 바쁜 그들에게 있어 커뮤니티라는 것이 쉬이 동네를 기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롱 아일랜드 시티 사람들, 브루클린 사람들, 미드타운 사람들, 어퍼 웨스트 사이드 사람들이라는 "캐릭터"는 어쩜 물리에서 말하는 "지역화(localization)" 같은 것일 수도 있을까. 바쁜 와중에 그 경계를 넘어가기 위해선 체력과 우정이 필요한.
5.
나는 분당에서 오래 살았다. 내가 아직 분당에서 살 적에, 강남역으로 놀러가면 "먼 길 왔다"며 반겨주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집 앞에서 광역버스 타고 도보 100m 미만, 25분 만에 온 내게 (그 때는 판교가 미미했다), 신촌에서 40분 넘게 걸려 온 친구들이 했던 말이었다. 모르긴 해도, "먼 데" 사는 나를 불러내기 미안해서 그들이 나를 부르지 않은 날들도 있었겠지. 어쩌면 뉴저지와 뉴욕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런 걸 생각하면, 나는 어디서든 "분당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대학교도 대충 뭐 그런 동네에서 다녔다.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는 늘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가득이었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1~2시간 정도는 거리낌 없이 움직이곤 했다. 그런 우정이 더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서울이나 뉴욕의 인구밀도 높은 라이프스타일에서 자라난 이들과 우리의 상식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미국에 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분당 사람"이라니, 쓴웃음이 지어져서 한두 잔 남은 진 병에다가 토닉워터를 콸콸 채웠다.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이라고 써져 있는 이 술은 캐나다에서 만들어졌다. 뉴저지 깊은 곳에서, 불금에 쌉싸름한 병나발을 부는 "분당 사람".
6.
어제 인터뷰를 하나 봤는데, 문제 하나를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날 나온 문제들 중 가장 쉬웠다. 그 뒤로 아직 연락은 받지 못했는데, 그 쉬운 문제를 그래놨으니 아마 낙방을 했겠지. 문득 중학교 때, 수학학원 선생님께서 "너는 어려운 문제 술술 다 풀어놓고 왜 맨날 제일 쉬운 문제에선 기괴한 생각들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책망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그 뒤로도 전혀 바뀐 것이 없다. 대학원 때 싸부님께서도 그 비슷한 얘기를 수도 없이 하셨다. 이 자가, 못 할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던져준 문제는 며칠 있다가 풀어갖고 가져오고, 응당 얼른 해와야 될 문제는 깔고 앉아서 지 혼자 일주일이 넘게 헛발을 차며 끙끙거리고 있으니, 이게 대학원생인지 침팬지인지, 아님 나랑 맞먹고 놀자는 건지, 도대체가 말은 통하는 건지, 통 구분이 되질 않아서 갈구는 것 하나도 수월치 않으셨을 테다.
이렇듯 나의 그 어떤 "이질"이란, 그 어떤 물리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번거로움이다. 내가 늘 신기하게 여겼던 것은, 나와 성장배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의 구분, 당연히 알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 상식과 비상식의 구분, 그리고 인간관계 안에서의 이런저런 구분들. Localization 안에서 볼록(convex)하니 편안한 그들.
아는지? 볼록(convex)한 집합들을 하나 하나 떼어내고 나면, 보통은 오목(concave)한 집합이 남는다. 그러니 내 인생이란 여기저기 삐져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겐 그들 방법론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고, 나는 그들의 군(group)에 속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늘 받으며 살았다 (차라리 "나는 달라" 따위 나르시즘이면 좋았으련만, 주머니 속에서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것이 하필 무능함이라면 그럴 수도 없다!)
혹시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지? 그 어떤 공유할 만한 경험의 결여에만 그 탓을 돌리면 되는 게 아닐까? 그야 그렇겠지만, 정작 나의 이질적인 천품이 한 몫 거들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혹여 내가 차후에 맨하탄에 월세를 얻는다고 해도, 과연 내가 뉴요커들의 군에 자연스레 속할 수는 있을까. 사실, 고작 10% 오른 뉴욕 월세를 갖고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나는, 어쩜 어딜 가더라도 분당을 떠나지 못하는 다소 특이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7.
오늘은 마침 오랜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이를 만났다. 그는 뉴욕에서 1년을 살았을 뿐이었지만, 앞서 말한 뉴요커들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뉴욕을 사랑했다. 그의 고민들은 상식적이며, 이해할 수 있고, 객관적인 경험에 기초하며, 일반적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뉴욕에서 자신의 군(group)을 찾았고, 뉴욕을 떠난 후에 마땅한 향수들을 아프게 누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내게 뉴욕(근처)에 있어서 좋으시겠다 했고, 나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와 만나고 뉴저지 깊숙한 곳으로 돌아와, 메이드 인 캐나다 런던 드라이 진 병에 토닉 워터를 콸콸 부어 술인지 키니네인지 암튼 쓴맛을 되새기며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이처럼 비상식적인 글을 불금에 도대체 왜 쓰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하는 오늘은, 단지 그렇다면 나의 집은 여집합인가, 하는 그런 다소 무례한 생각을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