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집합의 인간3

by 김간목

오늘은 점심에 친구를 만나 칼국수를 먹고,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했다. 두 개의 대화를 관통하는 것은 어쩐 일인지, 그 어떤 운명 같은 것이었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과 나를 굴려가는 모종의 의지, 좋아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쉬워 할 수도 없는 그런 장단점이 뚜렷한 환경에서 늘 여집합의 인간으로 인간으로 살아온 삼십여 년, 인생의 기로에서라면 나는 그런 것들을 여지없이 느낀다. 가끔 나의 촉이 미래를 보는 연유이기도 하다.


툭툭 털고 씩씩한 이야기를 하는 아들이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니께서는 "파친코" 이야기를 꺼내셨다. 요즘 한국에선 이 책을 없어서 못 구한다는데, 아들 덕에 몇 해쯤 전에 일찌감치 읽었다고. 내야 뭐, 문학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교보문고 가판대에 뭔 상을 받았다고 늘어져 있는 것을 좀 들여다보니 마음에 들어 사 온 것이 다였는데. 문장은 번역본인 탓인지 좀 평이했지만 그 내용이 굵직허니 보기 좋았고, "조선 놈은 패야 말을 듣는다"던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슬프다면 조금은 슬픈) 말버릇으로 그 당시를 넘겨짚어볼 따름인 이내보다야, 되려 "파친코"는 우리 웃세대의 심금을 울리겠노라 싶어 사다드렸던 것이, 아마 이역만리 타향에서 나이를 삼십 줄이나 먹고도 심려를 끼치는 불초 아들내미 인생에 몇 없는 효도가 되었는갑다.


나머지 한 번의 효도는 아마 군 복무할 때였지 싶다. 네게는 미안하지만, 유학 시절보다 아들을 자주 보게 되어 좋다시던 어머니. 휴가 나온 날 저녁이면 소파에 기대어 생전 보지도 않았던 야구를 아버지와 함께 보며 야구를 참 실속 없이 한다고 한탄하던 그 해질녘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오늘, 5월 초, 비가 오는 섭씨 9도, 발이 싸늘해서 넣으려던 긴 바지 츄리닝을 도로 꺼내 입고 침대에 누워 흘러가는 것들을 아무것도 휘어잡지 않은 채로 쓰는줄들이 제각기로 주절대는 뉴저지의 밤은 깊고 고요하다.


빗소리에 기대어 어쩐지, 내 다음 가 닿을 곳도 또 다른 여집합이겠거니, 그런 생각이 든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가 닿는 그 어떤 거대한 물줄기랑은 나는 인연이 없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그런 듯 싶다. 어딘가의 홈통을 따라 흐르다 또 굽이 굽이 돌고 돌다가, 어느 이름 없는 지류로 나는 흘러들어 가겠지. 소설 "파친코" 안에서는 시대의 파편들이 대를 이어 표류했다. 나도 그렇다. 아무도 없는 여기, 뉴저지 깊은 곳에서 내년이나 내후년 안에 저 복작대는 메트로폴리스, 뉴욕으로 내 삶의 터전이 옮겨지는 것은 아무래도 상상하기 힘들다. 또 다시 아무도 없는 그 어딘가의, 그러나 불평할 수도 없을 그런 애매하니 좋은 환경으로 찜찜하게도 흘러들어가, 끓는 속을 거듭 글로만 씻기우겠지. 이것은 외로움인가? 아마도 그렇다. 여집합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고독인가? 잘 모르겠다. 외로움이 조립식이라면, 고독은 붙박이 식이다. 후자는 태생적이다. 내가 본디 고독한 것인지, 아니면 고독함이 나를 빚은 것인지.


내 촉은 가끔 미래를 본다. 인생의 변곡점 마다 그랬다. 나를 아껴주는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리고 어쩌면 설레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뉴욕으로 나갈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를 끊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모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가깝고도 먼 저 빌딩숲은 어쩐지 나의 도시가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그 느낌은 생각으로, 확신으로, 그리고 그 어떤 의지에 대한 감응으로 점점 변모하고 있다. 키 작은 어느 마을의 불타는 석양 아래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 나왔다가, 무수한 형광들 불빛과 별빛 아래에서 밤을 보내고 동이 틀 때서야 퇴근하는, 고장난 스프링쿨러가 을씨년스럽게 아스팔트에 물을 끼얹고 있는 그런 새벽의 정경이야말로 나의 집, 나의 원점, 그리고 내가 속한 집합이다. 그 고요함이란 나를 떠나지 않고, 나도 떠나온 적이 없다.


내일은 밥을 해야겠다. 자꾸만 커지는 방 안에서, 이 밤에 한숨 쉬는 이가 나 하나라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요즘은 가끔 담배를 펴 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의 한숨이 눈으로 보인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건강엔 좋지 않다지만... 요샌 내 인생이 내 수명을 몇 년이나 줄여놓았고, 그래서 앞으로 살 일이 몇 년이나 남았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나를 굴곡지게 흘러가도록끔 하는 그 어떤 의지가 내게 예정해둔 것이 있다면, 나는 웬만해선 안 죽지 않을까, 그 따위 공상도 해본다.


수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갓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실망했었다. 심지어 건강검진에서 매우 건강하시다는 말을 듣고, 그럼 그 동안 내가 앓았던 모든 것들이 그저 꾀병이었나 하는 생각에 화딱지도 났었다. 어느 밤, 기숙사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다가 친구들 앞에서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버린 적도 있었다. 자랑할 일도, 불행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이십대를 정말 죽을 요량으로 살았었는데, 그 덕에 나는 의외로 사람이 튼튼하더란 것을 알았다. 한 3일 못 자도 머리는 쌩쌩 돌아가고, 헛소리는 좀 해도 문제 푸는 데는 지장이 없더라. 물론 그저 젊음이 튼튼했던 것이겠지만서두, 어쨌거나 나는 그 때 분명히 속을 많이 앓고 또 끓였었다. 어쩌다보니 그렇지 않게 사는 법을 못 배운 채로, 그냥 살던 대로 그렇게 죽 살고 있다. 대신 이제는 죽을 요량으로 산답시고 주접을 떨진 않는다. 그게 사람이 그렇게 배가 부른 채로 죽어지진 않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 깨달음이, 서른 넘어 내가 어른이 된 몇 안 되는 점이다.


요즘은 음역대가 많이 낮아졌다. 오늘 차를 몰고 친구를 만나서 칼국수를 먹으러 가고 오는 각각의 45분 동안, 차에서 내 18번들을 틀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목이 많이 상했다. 목을 쓴 일은 별로 없었지만, 상흔들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낫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다. 그래도 곱상하기만 했던 이십대의 목소리보단 지금의 목소리가 특색도 더 있어 다행이다 - 삑사리만 안 나면. 이렇게 별 것 아닌 불행 정도면 나름 쓸 데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코를 몇 번쯤 풀었다. 눈물은 조금 글썽이고 말았다. 몇 번 목이 메였지만, 나중엔 숨이 트여 노래를 한껏 잘만 불렀다. 목이 상하면 목이 상한 대로, 노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떻게든 굴러가고, 또 굴려갈 수 있다. 문득 "나를 어디로 데려가시렵니까" 하고 허공에 눈으로 물으면, 돌아오는 건 빗소리, 가닥 가닥 읊조리는 노래들이 시끄러운 밤, 그리고 이역만리 타향이다. 그리고 깊은 뉴저지다. 그리고 여집합이다. 그렇게 나의 본류에서, 정신 없이 빠른 유속 안을 마구잡이로 굴러다니며, 글쪼가리 하나, 혹은 장문의 설레발을, 필연적인 하류를 꿈꾸며, 모든 우연을 가장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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