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와 땀과 유리창

by 김간목

간밤에 비가 왔다. 지난 일요일에도 비는 왔다. 하지만 내가 모종의 부름에 따라 문을 나섰을 때, 땅은 이미 젖어있었다.


지난 일요일의 부름은 경찰아저씨였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코를 박고 라면국물을 들이키고 있는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냄비 속에서 울렸다. 일요일 저녁에 제복을 말쑥하게 입은 당신이 처음 한 말은, "이 집은 전기 들어오네요?" 였다. 그리고 잇는 말은, 불행하게도 전봇대 변압기가 터지는 바람에 그 아래 있던 내 차 뒷유리가 박살이 났단 것이었다.


장난 같은 소리였지만, 문 밖을 나서자 과연 우리 아파트는 정전이었다. 어둔 아파트 계단을 내가 앞장 서서 구불구불 내려갔다. 그리고 뒷문을 나서면 그곳은 사건 현장이었다. 뒷유리는 아주 박살이 나서, 손으로 대강 훑어내면 차 내부로 진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경찰 아저씨는 너도 재수 참 더럽게 없구나, 라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해서 내게 주었다 - 사건 번호와 자신의 관등성명. 이런저런 설명해야 할 것들을 모두 설명한 뒤에 "좀 더 안전한 장소로 차를 옮기는 게 어때?" 라며 그는 차고를 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월에 100불 하는 차고 자리를 사지 않았으므로 내 차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없었고, "그나마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 안전할 거예요" 라 말하고 씩 웃어보였다.


일주일 내로 사건 서류가 도착할 거라는 경찰 아저씨와 빠이빠이를 하고, 나는 어두컴컴한 계단과 복도를 거슬러 올라왔다. 라면 냄새가 나는 어두침침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두꺼운 조거 팬츠와 털스웨터를 입고 나갔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 밤이 무더웠단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보험사를 통해 유리창 교환을 신청하니 내 과실인지 어떤지는 따로이 입력할 수 없는 모양이었고, 교환에는 7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 안전할 거'라던 내 말을, 이번엔 내가 기원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는 라면을 마저 해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그 날은 전기가 들어왔다 끊겼다를 반복했다. 다음날엔 마침 화상 인터뷰가 있었다. 내일까지 전력이 불안정하면, 나는 차를 몰고 어딜 갈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잠이 오지 않던 그 밤은, 비가 왔던 것이나 낡은 변압기가 터졌던 것이나, 그리고 내일 인터뷰마저 거짓말인 것처럼 조용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찹쌀떡 대여섯 개를 해치운 뒤에야 당이 올라서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곤 일어나서 특별한 일도 없이 인터뷰를 망쳤다. 그 뒤로 일주일을, 집에 발이 묶인 나는 견디며 보냈다. 뱃속에 굴러다니는 납덩이 때문에, 나는 첫째로 하루를 굶었으며 둘째로 창문에 블라인드를 모두 쳤다. 그러는 중에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별 것도 아닌 빨랫감들은 쌓여갔고, 마침 어제는 또 비가 왔으므로, 집 안은 한층 더 어두침침해지고, 눅눅지며, 또 시원해지어, 썩히는 시간과 함께 고여 있기에는 나름 쾌적했던 것 같다.


한 것도 없이 그렇게 일주일이 다 가고, 1시 반에 온다던 유리창 교환을 오늘 3시 반에 전화로 부름 받았다. 나의 웅덩이를 박차고 나와, 전기가 들어오는 복도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뉴저지 습한 33도의 여름날, 이십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기술자는 긴팔 긴바지 유니폼을 입어 이마에 땀이 송글거리는 채로 나를 맞았다. 우리는 함께 트렁크를 비웠다. 해치백을 열고 닫으매, 깨어진 유리창은 우수수 떨어졌고, 그는 1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집으로 올라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이렇다 할 것이 없어서, 나는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집 앞 델리로 향했다. 콜라 한 캔과 콜라 한 병, 그리고 과자를 사서 돌아오는 20분, 나는 금방 땀에 쩔었다. 콜라 캔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초조하게 콜라 한 병과 과자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짜디 짠 과자가 무수히 부서졌고, 덕분에 나는 뭐라도 하는 것 같았다.


십여 분 뒤, 유리창을 다 갈았다는 연락이 왔다. 냉장고에서 콜라 캔을 꺼내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해질녘의 땡볕은 이제 우리 둘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땀방울이 확연히 굵어진 그에게, 나는 얼음보다도 차가운 콜라 캔을 건넸다. 토요일 해질녘의 노동에 찌들었던 그의 얼굴이 일순 환하게 피었고, 우리는 잠시 시덥잖은 얘기를 나눴다 - "별 일이 다 있네. 나라면 이제 여기 안 댈 거"라는 그의 친절함. 그가 웃으며 그 말을 건넸기 때문에, 나도 이번엔 차를 옮겨 대기로 했다.


지리했던 일주일이 지나, 차에 시동을 거는데 와이퍼에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경찰 아저씨가 혹시 몰라 끼워두고 갔는가 싶어 펼쳐 보는데, 건너편 주택에 사는 아저씨가 "이러이러해서 당신 차 유리가 박살나는 걸 내가 목격했으니, 필요하면 증인이 되어주마"는 내용이었다. 그 쪽지는 간밤의 비에 우그러진 채로도, 정직한 마음을 올곧은 글씨로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를 옮겨놓고, 저녁 6시의 뙤약볕에 싸대기도 뒤통수도 한껏 맞아가며, 굵은 땀방울을 뚝뚝 떨구어 가며,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인중도 한 번씩 훔쳐가며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참이다. 잔디밭에선 배가 나온 히스패닉 아저씨들이 축구를 하고, 머리가 빠글빠글한 유색인종 아이들은 나를 방패삼아 술래잡기를 한다. 이 허름하고 낡은 동네라면, 3년에 한 번은 변압기가 터지기도 하는 것이겠지. 연식이 10년이 되면, 차 뒷유리도 한 번은 갈아줘야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눅눅하고 쾌적한 방 안에서 끌려나와, 식은땀을 이처럼 묵은땀으로 씻어가며 집으로 돌아가기도 언젠가는 매일반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이제 어두침침한 집으로 도로 들어가면, 먹다 남은 콜라 반 병이 시원 미지근하니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오늘 오랜만에 블라인드를 모두 걷어올려 보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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