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일로 축하를 전하는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시험 점수 50점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최악은 면한 거죠 뭐."
현 직장을 나올 때가 되어, (남들처럼) 회사 메일 주소를 1년 동안 살려두어 달라고 상사에게 부탁했다. 당연히 해줄 거라 생각했더니, 일 하나 해주기 전엔 안 해주겠다신다. 3년 내내 그 때문에 힘들었는데, 떠나는 길에도 쉽지 않은 사람이다. 물론 이 같은 일을 상사에게 직접 부탁해야 하는 현 직장도 참 쉽지 않은 곳이다.
이번에 "시험 점수 50점을 받았다"는 일도, 내게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동안 참 쉽게 살았구나, 그리고 나의 2022년은 쉽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오늘은 머릿속을 맴돈다.
요즘은 겸손에 대해 생각한다. 어렸을 때엔, 겸손을 규범 상 겸손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말과 행동의 패턴으로 배웠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지나친 겸손을 떨며 살아왔다. 나는 좋은 학생이고, 그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의 "인성면접"에서 50점 이하의 점수를 받아들면서, 나는 혹시 겸손을 모르는 사람인가 하고 자문한다.
주변 사람들은 네가 겸손하지 않으면 누가 겸손하겠느냐 말하겠지만, "50점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어딨겠느냐"는 나의 저 말이나, 상사에게 내가 그 동안 해준 것에 대한 당연한 친절을 기대하는 것은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70점은 받아야 하는 사람인가? 나의 성취는 사실 떨떠름할 일이 전혀 아닌 것인가? 상사와 나의 관계를 과신하지는 않았는가?
겸손이라는 것은 어쩌면, 정확한 자가진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것과 불신하는 것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물론 자가진단의 정확성이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주변의 평가와 자신의 평가 사이에 수시로 격차가 나타날 때에는, 어느 한 쪽을 의심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애당초, 자가진단이 상시 돌아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오만할 수 있을까.
나이를 (얼마 먹지도 않았지만) 먹으면, 갖가지 덕목들이 달리 보인다. 앞서 말한 겸손이라든가, 그 외에도 용기라든가, 정의라든가, 지혜라든가 하는 것들. 어렸을 땐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도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안개 속에서 사바세계의 도덕들이 둥둥 떠다니는 때, 서투른 나는 어깨나 팔꿈치 혹은 엉덩이를 여기저기에 부딪혀가며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다만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겸손이나 갖은 도덕들을 문항 별로 나눠 점수를 매겼을 때, 50점을 넘기면 좋은 사람일까. 그게 만약 좋은 사람의 정의가 된다면, 오늘 나는 50점을 받아들어도 마냥 기쁘기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