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담배, 그리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by 김간목

더듬는 듯 흐느끼는 듯한 현악기 소리로 영화는 시작한다. 1975년 작 영화 안에서 나는 놀라움의 표정을 본다. 평온을 가정하고, 평온을 가장하는 정신병원에서 그것은 영화 내내 발작적으로 드러난다.


죄수들, 아니 환자들은 담배를 몇 개피씩 걸고 카드게임을 한다. 최소 담배 1개피(다임=10센트)를 걸어야 하는 게임에서, 마티니(대니 드비토 분)은 담배를 부러뜨려 니켈(=5센트)를 걸겠다 한다. 맥머피(잭 니콜슨 분)은 최소한 다임은 걸어야 해서 안 된다고 말한다. 마티니는 담배 반쪽을 마저 내어놓으며, 그럼 다임을 걸겠다고 말한다.


IMG_20220817_173059_048_2.jpg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5년 작) 중, 마티니가 허리가 부러진 담배를 판돈으로 거는 장면


떼를 쓰는 마티니에게 맥머피는 이렇게 말한다: "담배를 부러뜨리면 2개의 니켈이 되는 게 아냐, 마티니. 그건 그냥 쓰레기야. 피워보면 알아."


2시간짜리 영화의 약 25분 경부터 시작되어 영화의 2분여를 차지하는 저 장면이 나는 묘하게 뇌리에 남았다. 병동 내부를 흐르는 실내악곡 "Medication Valse"(잭 니체 작곡)의 다소 우스꽝스런 멜로디와, 효용을 잃은 사물들의 비극이 어긋난 채 맞물리는 그런 섬뜩한 케미스트리 탓이었을까.


아무튼 마티니는 계속해서 맥머피에게 패를 달라고 떼를 쓴다. 맥머피는 판돈을 걸지 않은 마티니에게, 지금은 네 차례가 아니라 말한다. 그리곤 판돈을 제대로 건 놀이패를 손으로 훑어 가리키며 "이들이 진짜 사람이야, 마티니"라 말한다. 실내악곡의 음량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떼를 쓰는 마티니에게 맥머피는 결국 패를 주고 말지만 마티니의 패가 합계 20이 되어 (아마도 그러한 블랙잭의 바리에이션인 듯하다) 맥머피는 마티니의 판돈을 가져간다. 마티니가 계속해서 패를 달라고 떼를 쓰자, 짜증이 쌓인 맥머피는 TV를 보던 스캔론(델로스 V. 스미스 주니어 분)에게 "누가 오프너냐"고 소리를 질러 묻는다. 실내악곡의 음량이 이제 TV 소리를 덮었기 때문이다.


스캔론은 제대로 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마티니는 계속해서 떼를 쓰며, 체스윅(시드니 라식 분)까지 보채기 시작한다. 맥머피는 마침내 폭발하고, 그 분노를 계속 커지기만 하는 실내악곡 소리에게 돌린다. 간호사실에 쳐들어가 음악 소리 좀 낮춰달라며 싸움을 거는 그에게 래치드 간호사(루이스 플레쳐 분)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모두를 위한 음악이예요."


영화의 현 시점에서, 맥머피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맥머피가 저항하는 대상이 언제나 간호사들임에서 잘 나타난다. 교도소의 강제노동을 피하기 위해 꾀병을 부려 들어온 그에게 있어선, 환자들보단 간호사들이 자기와 더 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는 단 한번도 환자들에게 (짜증은 낼지언정) 화를 내지 않는다. 사회에서 "진짜 인간"으로써의 효용을 잃고 병동에 갇힌 환자들과는 달리 자기는 여전히 판돈이 남아있는 "진짜 인간"이다. 그렇기에 맥머피는 자신을 "허리가 부러진 담배" 취급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그렇지만 맥머피는 기계적으로 매일을 반복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간호사들보단 환자들에게서 인간성을 느낀다. 효용 면에서의 "진짜 인간"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짜 인간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맥머피는 규칙의 조그마한 틈만 보이면 그들이 인간성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한다. 이렇게 맥머피는 억압된 정신병자들과 기계적인 규칙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매버릭의 위치를 점하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그 균형을 끊임없이 깨트린다. 그에 따라 환자들의 가장 인간적인 표정, 바로 "놀라움의 표정"이 본 영화의 전반부 내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맘 편히 정신병원의 메시아로 승화하도록 두지 않는다. 맥머피는 그룹 세션 도중, 환자들 대부분이 스스로 병원에 들어왔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데, 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환자들이 수동적으로 병원에 갇혀있을 뿐인 "허리가 부러진 담배들"에서, 자기 쓸모를 되찾기 위해 자기 자신과 끝도 없이 싸우고 있는 인간들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마티니가 허리가 부러진 담배를 계속해서 배팅하는 장면 역시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늘 여유가 넘치고 상황의 변화에 순발력 좋게 대응하는 맥머피가 처음으로 놀라움의 표정을 짓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탈출 계획을 짜며, 맥머피가 오직 치프(윌 샘슨 분)만을 가담시켰던 이유가 된다. 왜 맥머피는 버스를 탈취하거나 공갈로 고깃배를 외상 치렀을 때처럼 모든 환자들을 공범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물론 통제하기 어려운 정신병자들과 계획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계산이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론 왜 탈출 일보 직전의 열린 창문 앞에서도 환자들에게 함께 가자며 부추기지 않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보다 많은 환자들을 달콤한 자유의 말로 꼬드겨 탈출에 가담시키면 분명히 자기 자신에 대한 추적도 줄어들어 도망치기 편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 이유를 맥머피가 환자들에게 갖게 된 애정, 더 나아가서는 존중에서 찾는다. 병원의 규칙이 때로 그들을 억압하더라도 환자들은 여전히 치료를 받는 중이다. 따라서 그들이 맥머피를 따라 캐나다로 도주하게 되면,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거짓부렁으로 병원에 들어온 치프나 맥머피완 달리, 환자들은 치료라는 그들의 그들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선택한 "진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탈출은 압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투쟁의 상실이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빌리(브래드 듀리프 분)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맥머피와 함께 가지 않는다. 치프가 개수대를 뽑아 창문을 깬 뒤 탈출할 때에도, 환자들은 놀라움의 표정으로 인간 찬가를 부를 뿐, 아무도 치프를 따라 탈출하지 않는다. 사회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가진 그들은 이미 허리가 부러진 담배들이 아닌, 허리가 부러진 담배를 끊임없이 배팅하는 사람들이다.


더듬는 듯 흐느끼는 듯한 현악기 소리로 영화가 끝나면, 머리에 남는 것은 맥머피가 마지막에 보여준 놀라움의 표정과,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는 래치드 간호사의 우는 듯한 표정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은 이 두 장면을 참 길고 고통스럽게도 잡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또한 생각하게 된다. 치프는 왜 맥머피와 "함께 가는 길"을 택했을까. 아마 그 역시도 자기 안에 갇혀, 모든 투쟁의 수단을 잃은 채 허리가 부러진 담배가 되어버린 친구에 대한 애정과 존중 때문일 것이다. 자세한 것은 스포 방지 차원에서 말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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