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과 대구살, 그리고 웨이트

by 김간목

반년 만에 무게를 치고 왔다. 토할 것 같았다. 몸 푸는 정도였는데도 그렇다. 21살 처음으로 학교 체육관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도 오늘처럼 토할 것 같았다. 나를 데려갔던 친구에게 웨이트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몰랐다. 10년 뒤에도 내가 그 체육관에서 무게를 치고 있을 줄은...


대학원 때 학교 앞엔 트레이더 조'스가 있었다. 거기선 포를 뜨고 난 대구살 조각들을 고맙게도 파운드당 4.5불에 팔았는데, 운동 마치고 나서 그거 신라면에 듬뿍 넣어먹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대학교 땐, 그리고 대학원 땐, 시간은 있어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는 늘 없었다. 하루가 27시간이고 주중 주말이 없던 그 때, 주중 주말 없이 밤 10시와 11시 사이에는 무조건 열려있던 학교 체육관은 고마운 곳이었다 (심지어 공짜였다).


아무튼 그렇게 학-도-집-체를 오가며 살았다. 문제 풀다 안 풀리면 자고, 일어나면 운동 갔다오고, 운동했으니 밥 먹고, 밥 먹었으니 공부 좀 하고, 공부 안 되면 문제 풀고, 안 풀리고, 자고, 운동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면 나는 헬창이었다(...) 수분부족인 줄로만 알았던 게 한국서 건강검진 받아보니 횡문근융해증이었던 적도 있다. 하여튼 낙이라곤 운동 밖에 없어 축구까지 살벌하게 해댔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들처럼 막 3대 500을 친 것도 아니라 어데 운동 좋아한다고는 쪽팔려서 말도 못했다. 그나마 시간이 넉넉히 지난 이제에 지난날 미련했던 얘기들을 끌적여본다.


그러다 대학원 말엽, 햄스트링이나 손목 몇 번씩 터지고, 프로젝트도 몇 개 부러뜨리고, 그렇게 대학원도 헬창도 어영부영 졸업했다. 그리고 동부로 넘어왔다. 코로나가 터졌고, 체육관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러닝을 늘렸다. 무릎이 안 좋아졌다. 1년 뒤, 체육관이 다시 열었다. 스쿼트 들어올리는데 무릎이 불안정해서 놀랐다. 그래서 데드를 대신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데드리프트 너마저 나를 배신하는 거냐며 나는 풀업으로 분풀이를 했다. 그렇다, 풀업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게 깔짝대다 최근 반년은 일신상의 이유로 아예 쉬었는데, 당연히 살이 매우 심하게 쪘다. 그래서 지난 주엔 다시 러닝을 나갔다. 내심 반년이나 쉬었으니 무릎이 완치됐으리라 기대했는데... 에나콩콩, 2분 만에 무릎이 뻐근했다. 나는 화가 아주 많이 났다. 그래서 인대든 반월판이든 어차피 터질 거라면 그냥 오늘 터져버리라며 뛰었다.


그래도 솔직히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감싸듯 러닝폼을 바꿔 뛰었는데, 놀랍게도 다음 날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도 그 러닝폼으로 뛰었다. 무릎은 여전히 아프지 않았다. 아직 물은 차 있는 것 같지만 어찌저찌 될 것 같았다. 덕분에 지난 주와 이번 주엔 도합 6일 정도는 뛸 수 있었다.


오늘은 동네 체육관엘 갔다. 저가 체육관이라 프리웨이트는 적고 기구가 많은 곳이다.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나는 기구로 다시 시작했다. 땡기고 밀기를 약 30분, 첫날치곤 딱 좋게 조졌다고 생각하고 돌아오는데, 차 안에서 뒤늦게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덥지도 않은 날 에어컨을 풀로 틀고, 운전대를 정신줄인양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신호등 걸릴 때마다 좌석 밑을 미친 사람처럼 더듬었다 - 굴러다니는 생수병 하나 정돈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다 집에 오니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사람 놀리나 싶었지만, 이성을 되찾고 곰곰 생각해봤다. 일단 벤치프레스할 때 달고 살던 어깨 통증도 없었다. 데드리프트하다 삐끗한 허리도 괜찮았다. 무릎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세팅된 채로 밀었던 레그프레스도 무게가 괜찮았던 것 같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21살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10년 동안 체육관에서, 학교에서 느꼈던 모든 업다운들이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기구에서 1년, 프리웨이트로 3년, 그 정도 잡고 다시 무게를 시나브로 올려가면 그래도 예전의 80프로 정돈 되지 않을까?


21살에 나는 웨이트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3년 동안은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짜증스러웠다. 그러니 세상 일의 맞고 안 맞고는, 의외로 10년 정도는 진득이 해봐야 아는 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담 그 동안 부러지고 부러뜨렸던 이것저것들도, 어쩌면 그리 억울할 일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 당연한 것을 깨닫는데 오래도 걸렸지만서두.


아무튼 정해진 틀 안에서 몸이 부서져라 해대는 나날들이 마냥 즐겁고 좋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하지만 러닝폼을 손 보고 뛴 일이나, 부서진 몸을 기구 위에서 다시 주워담는 그 일도, 나는 앞으로 분명히 즐겁고 좋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21살의 나에게 오늘은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여전히 중간이 없고 유난이 많다. 그리고 트레이더 조'스 대구살 조각들은 어디서든 파는 게 아니다. 많이 먹어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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