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지연이 될 거라던 열차가, 10분 만에 준비가 되어 우리는 되려 횡재한 느낌으로 우르르 몰려 탔으나, 그 열차는 LTE도 터지지 않는 임의의 철로 위에 선 채로 10분 이상을 보냈다. 졸다 말고 일어난, 옆자리에 앉은 히스패닉 소년은 일어나 보니 열차가 서 있어 뿌연 유리창을 두들기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는 관성계에서 꿈을 꾼다.
옆자리에선 에스빠뇰
앞자리선 영어
뒷자리선 어딘지 모를 이국의 언어
그리고 대각선 뒤쪽에서 뜬금없이 들려오는 장범준 노래 - 전화 오셨군요?
여기가 어디 쯤이었더라, 두번거리는 내 옆 창가자리에서 히스패닉 소년이 부시럭거렸다. 여기서 내리냐고 묻는 내게 그는 끄덕였다.
나는 일어서고, 소년은 땡큐라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이고,
내가 비켜서고, 소년이 일어서고,
소년은 떠나며 다시 한 번 땡큐라 말했는데,
나는 하마터면 Mon Plaisir라고 말할 뻔해서...
하루의 끝에서 세상 가장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